환경 호르몬의 공격 시대

by 룡이

오늘은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텀블러는 사 왔습니다. 제가 가진 2-3개의 텀블러들은 모두 무겁고 커서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귀찮다.'는 이유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은 시간들이 쌓이니 일회용 음료컵도 쌓여가고 후회스러웠어요. 플라스틱이 썩는데 걸리는 시간이 자그마치 500년입니다. 조선 시대에 플라스틱이 있었다면 지금에서야 썩어 없어졌을지 모른 죠. 그러다 사람들이 버린 빨대를 코에 박고 살아갔던 바다 거북이 기사를 읽었어요. 우리는 별거 아닌 플라스틱 빨대인데, 이 거북이에겐 끊임없는 고통의 사슬이었다는 생각에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엮어가다 보니 인간도 인간이 만든 욕망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쓰레기 더미도 문제지만 환경 호르몬의 공격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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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사용했던 보온병과 함께 저의 음료를 담당할 새로운 친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도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환경 호르몬?

좀 더 유연한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통조림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든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늘이기 위해, 생리대와 기저귀로 편리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섬유를 위해 끊임없이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로 만들어진 인공 화학 물질의 수가 8만 7천 가지가 넘었다 하니 지금은 몇 종류가 있을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 이런 화학물질로 만든 물건들을 빠른 속도로 소비하다 보니 우리 삶은 편리해졌지만 쓰레기가 넘쳐나고 그로 인한 환경호르몬들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과 소비를 하는 시대에서 화학적으로 약간의 조작이 가해지면 더 저렴하게, 많은 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환경 호르몬은 꼭 플라스틱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플라스틱이 높은 열온도에 반응했을 때 환경호르몬이 나올 뿐 아니라 쓰레기를 땅에 매립했을 때,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농약을 뿌려 기른 쌀을 깨끗하게 씻지 않고 밥을 해먹을 때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어요.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있다는 자각이 힘들다는 거죠.


이 환경 호르몬이 문제인 이유는 자궁, 갑상선과 같은 호르몬 수용체에 호르몬처럼 거짓 신호를 보내 정상 세포의 기능과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에스트로겐 같은 천연 호르몬을 흉내 내어 천연 호르몬의 기능을 억제하고 우리 몸의 대사 방법을 바꾸는 염치없는 물질이에요. 그렇게 환경 호르몬은 우리 몸을 서서히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해성이 입증된 화학 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화학 성분을 대체하는 또 다른 화학 성분을 첨가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스페놀 A의 유해성이 알려진 후, 비스페놀 A 성분이 없다고 홍보하는 물통, 플라스틱 용기 등 많은 제품들이 많아요. 하지만 화학식을 조금 변경한 다른 종류의 비스페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유해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얻기 힘들 뿐이지 기본 분자가 유사하기 때문에 결코 환경 호르몬에 자유롭다 안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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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호르몬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책, '환경 호르몬의 반격'은 정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환경 호르몬은 여성 호르몬의 불균형 원인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에스트로겐은 단일 물질이 아닌 60개가 넘는 호르몬을 총칭하는 말로 남녀 성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양이 몸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석유 화학제품에서 만들어지는 환경 에스트로겐인 환경 호르몬은 천연 에스트로겐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화학 섬유 의류, 플라스틱, 계면 활성제 등으로 환경 호르몬은 피 속으로 녹아 우리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요. 이 과정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만나게 되고 우리 몸은 가짜 에스트로겐을 진짜 에스트로겐처럼 착각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DNA와 세포에 잘못된 신호가 전달되고 인체의 비정상적인 활동이 증가하게 됩니다. 남성임에도 가슴이 커지거나, 여성임에도 생리를 주기적으로 하지 않고 불임, 에스트로겐으로 인해 발생하는 암으로 고통받는 이유가 이에 있어요. 또, 신체의 건강 문제뿐 아니라 ADHD 같은 질병을 일으켜 정신 건강에도 해를 끼칠 수 있어요.


보통 남성보다는 여성이 환경 호르몬에 노출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남녀의 신체 지방 비율과 장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남성은 몸 전체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12-15% 임에 비해 여성은 21%로 높습니다. 환경 호르몬은 지방 세포에 철썩 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방 세포가 많을수록 환경 호르몬이 축적될 가능성이 높아져요. 또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몸집이 작기 때문에 체내 장기도 더 작아 유해 물질을 분해하는 해독 능력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환경 호르몬은 신체적 문제 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어요. (출처: The Health and Environment Alliance (HEAL))





환경 호르몬과 여성 질환

초경이 빠른 여성,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한 여성, 음주와 흡연을 주기적으로 하는 여성, 인스턴트를 많이 먹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환경 호르몬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유방암, 자궁암, 자궁 근종, 생리 전 증후군, 생리 불순, 불임, 내막증과 같은 호르몬 질환을 가질 가능성도 높아지게 돼요. 저 역시 자궁 근종이 있었고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한 편이니 환경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것이 린든 세이 작가는 농약이나 전봇대, 울타리에 살충제, 방부제로 사용되는 펜터 클로로페놀, 살충제 및 화학물질에 사용하는 헥사클로로사이클로헥산 자궁 근종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언급한 데다 유기 염소계 물질이 단독으로 있을 때 자궁 근종 세포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고 밝혔습니다.

수은은 호르몬 장애나 탈모를 야기할 수 있고 카드뮴은 갑상선 기능 저하나 습관성 유산, 자궁 근종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자궁 내막증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궁 내막증 환자들을 일괄적으로 조사한 마야마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궁 내막증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폐목재, 기저귀, 살충제에서 나오는 다이옥신 수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셰리 리어 연구진도 지속적으로 다이옥신에 노출된 벵골 원숭이가 자궁 내막증에 걸리거나 악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게르하르트는 자궁 내막증 환자의 혈액 내 폴리 염화 비페닐계 물질 수치가 아주 높다고 언급하였고요. 가스투이스베르크 대학병원은 도시 생활을 하며 건축물이나 공기에서 얻는 유해물질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렇듯 많은 학자들이 자궁 내막 세포로 거짓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 바로 다이옥신, 폴리염화 비페닐계 등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임을 추측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진 않습니다.





여러 책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곤 '아, 내가 가진 근종이 환경 호르몬 탓도 있겠구나.' 싶으니 함부로 일회용 컵을 사용할 수 없겠더군요. 그러면서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저의 생활 패턴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종이 영수증을 만지고 가끔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 용기를 돌리고 일회용 컵을 사용할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도심에 살다 보니 인공 화학물로 만든 이것저것을 만지고 살고 있고요. 이렇게 저는 환경 호르몬이 가득한 환경에서 둘러 쌓여 있더군요. 하다 못해 길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도 그 일종이니까요.

지금은 쓰레기도 많이 줄였고 플라스틱 반찬 용기는 모두 유리 용기로 바꿨습니다. 화장과 파마, 염색도 거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 사용은 쉽게 줄여지지 않습니다. 갈 길이 많이 남았어요.

이렇게 해도 쓰레기 제로인 삶을 만들 수도 없고 세상에 존재하는 환경 호르몬을 모두 피할 수는 없음을 알아요. 그래도 중요한 건 노력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쓰지 않은 플라스틱 커피 컵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환경을 보호할 수 있고 손에 닿는 미세 플라스틱 노출도 줄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어떻게 더 환경 호르몬 노출로부터 안심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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