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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Mar 15. 2024

#20200516

‘우리 내일 강남에서 만나요’

‘으응? 그래 뭐 어디든 크게 상관은 없지요~’

‘나 내일 스승의 날이라서 동기들이랑 교수님 뵙고 점심 먹기로 했거든’

‘아~ 그렇구나 돈독한데~교수님과’

‘전공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오빠는 교수님 안 만나지?’

‘응~ 잘 아는데 ㅋ’

‘그럼 내일 반포 쪽 호텔에서 점심 먹기로 했으니까 근처에서 보아요~’

‘응~ 방배동에 내가 좋아하는 빵집이 있는데 거기 가보자 내일은’

‘무슨 좋아하는 집들이 그리 많아ㅋ 알겠어’


어제 저녁,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런 ‘날’들과 친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긴 난 내 생일도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니.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날’은 아마도 ‘여자친구의 생일’ 뿐인 거 같다. 부모의 생일도 그렇게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닌 거 같은, 음력이어서 항상 며칠인지를 신경 써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아침부터 일어나서 무언가를 계속하곤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오늘 고백을 해야겠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까? 그냥 무미건조하게 ‘사귀자’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말도 안 하고 갑자기 손을 잡아 버리는 것도 내키지는 않았다. 지난번 회사 앞에 고깃집에서 들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곤란해’라는 그녀의 말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그런 얼렁뚱땅을 선호하진 않는 편이다.

점심을 해 먹고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나도 모르게 조금은 더 챙겨 입는 모습을 발견하곤 어이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평상시에 되게 이상하게 입고 다니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정확하게 몇 시에 그녀에게 연락이 올지 모르니 슬슬 나가서 그녀가 말한 호텔과 붙어 있는 백화점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날씨도 적당했고 모든 것이 완벽한 거 같았다. 하나만 빼고. 여전히 복잡한 내 머릿속과 마음속뿐.


‘어디예요? 나 이제 끝났는데’

‘그래? 나 옆에 백화점에 있는데 1층에서 볼까?’

‘아 그래? 그럼 나 뭐 사야 하는데 5층에서 봐~’

‘응 곧 보아’

5층에 도착해서 좀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 그녀가 보였다. 그녀도 오늘 교수님을 만난다고 조금은 챙겨 입은 거 같았다. 그녀의 착장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역시 난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 잘 먹었어? 오랜만에 동기들이랑 교수님과?”

“응~ 잘 먹었어 오빠는 뭐 먹었어? 집에서 먹고 나왔어?”

“응 난 집에서 해 먹고 나왔지~ 근데 뭐 사게?”

“아 수업할 때 입을 레깅스 하나 사려고 오빠도 하나 사주까ㅋ?”

“아니~ 사양할게 난 레깅스는 무리가 있어 보여 ㅋ”

“왜 키도 커서 잘 어울릴 거 같은데…ㅋ”

“아니야~ 어서 가자. 사고 다른 동네로 가야 해서~”


그녀가 그렇게 이것저것 고민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서서 남자 운동복들도 조금 보고 있었다. 근데 얼핏 보니 그녀가 뭔가 주저주저하고 있는 거 같아서 옆에 가서 넌지시 물어봤다.

“왜? 둘 다 맘에 들어?”

“응 근데 잘 모르겠네~ 뭐가 더 나을지”

“입어봐 레깅스는 입어보면 안 돼?”

“아닌 그런 건 아닌데 오늘 옷이 조금 그래서 입어봐도 잘 모를 거 같아서”

“아~ 그런 게 있겠구나. 그럼 둘 다 사서 집에 가서 입어 보고 하나는 환불하던가 아님 둘 다 맘에 들면 둘 다 입던가”

“음… 근데 지금도 레깅스는 많긴 해서 두 개나 더 살 필요가 있나 해서..”

“그럼 내가 하나는 사 줄게~ 슬이가 하나 사고 내가 하나 사 줄 테니 집에 가서 입어보고 결정해~”

“진짜? 대박ㅋ 음.. 그럼 그럴까?”

“그렇게 해~ 내가 보긴 컬러는 다 이쁜 거 같으니, 잘은 모르지만”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겠다~레깅스 사줬으니 오빠가 좋아한다는 그 빵집에서 빵은 내가 살게”

“그러시지요~”


그렇게 백화점을 나와서 이동해서 그 빵집에서 -빵집이라곤 하지만 전형적인 빵집은 아닌- 구움 과자도 좀 사서 근처 커피집으로 갔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근데 나랑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은 어디야?”

“무용 관련한 전시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가려고 했지~ 난 무용은 잘 모르긴 하지만 슬이한테 배우면 되는 거고~ 그리고 괜찮을 거 같더라고”

“오~ 그런 생각까지~ 훌륭해, 다음 주에 갈까?”

“그래~그럽시다”

“지난주에 갔던 커피집은 어디야? 왜 그런데 혼자 다녀?ㅋ”

“아~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던 적이 있었거든, 그때 이곳저곳 찾아보다가 발견한 곳인데 지금은 꽤 유명해져서 사람이 엄청 많아”

“그렇군 나랑도 가야 해~ 나 거기 맘에 들어”

“응~ 안 그래도 그 집 사장님한테 다음에 올 땐 혼자서 안 온다고 말하고 왔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잘 맞는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대화에 집중한 체 난 오늘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미션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던 중 그녀의 한마디에 난 다시 한번 나의 멍청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 오빠 여자친구 하고 싶은데…. 우리 연애할래요?”

“응.. 그래~~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말인지…. 왜 내 입 밖으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는지 나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심이긴 했던 거 같긴 하다. 하루 종일 내가 고민하고 있던 말을 먼저 해 준 그녀가 고맙기도 했고. 나의 답을 들은 그녀는 세상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의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오빠 그럼 우리 연애하는 시작하는 기념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삼겹살 어때요?”

“응 ~ 그래, 뭔가 하루종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나도 배가 엄청 고프네~ 가자”


나는 나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자연스럽게 풀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소개팅을 하고 몇 주간의 썸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종종 제안서등 pt를 할 때 마지막에 적는 문구가 있다. ‘END, AND’ 그 문구가 딱 맞는 날이기도 했다. 끝 그리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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