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런남자 Mar 08. 2024

#2020510

‘좋은 아침~ 아침에 운동 삼아 산책 나왔어~’

그녀의 문자와 함께 이미지가 한 장 같이 왔다. 누군가가 찍어준 듯한 사진. 

그녀를 주인공으로 주변 배경이 있는 그런 사진. 

‘잘 잤어? 잠자리 바뀌어서 잠을 설치거나 하진 않았나 모르겠네~안개가 낀 건가? 아님 어플로 뿌연 효과를?’

‘무슨 소리야 ㅋ 안개가 낀 거 같아 강원도라서 그런가? 아침엔 약간 쌀쌀하네~’

‘그럴 수 있겠다~ 강원도는 그런 곳이니까’

‘오빠는 이미 일어났어? 아님 아직 뒹구르르 하고 있는 중?’

‘응 아직 뒹구르르 하고 있는데 배고파서 일어나려고’ 

‘응~ 알겠어. 잘 챙겨 드시와요’

‘네~’ 


이미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있었지만 너무 과하게 부지런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살짝의 거짓말을 했다. 일반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주말과 휴일에는 조금은 늘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난 쉬는 날이라고 해도 그렇게 늦게 까지 잠을 자거나 하진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배가 고파서 일어나는 것이자만 잠은 충분히 그리고 잘 자는 편이라 그렇게 피곤하진 않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복 중 하나라고 여기면서 살고 있다. 


오늘은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은 조용한 곳에 가서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예약해 둔 카쉐어링 차량을 타고 종종 가는 경기도의 한 카페로 향했다. 지난 연애를 마무리하고 생각이 복잡할 때 찾은 커피집으로 그때 이후로 종종 가는 편이다. 이제는 꽤 유명해져서 사람들도 많지만 어느덧 사장님이랑 친해져서 내가 가면 한 자리 정도는 빼 주신다. 

미리 이야기한다면. 


‘사장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내일 오전에 가려고 하는데 운영하시죠?’

‘그럼요~ 언제나 운영하죠 저는’

‘혹시나 개인적인 일로 쉬시나 해서요~ 내일 오픈할 때 맞춰서 갈게요, 혹시 사람 너무 많으면 좀 부탁드려요~’

‘네네~ 근데 내일도 혼자서?’

‘ㅋㅋ 네’

‘네~ 내일 봬요’ 

어제 간단하게 dm으로 예약 비슷한 걸 해 둬서 가는 길이 조금은 부담이 덜한 거 같다. 


오전에 그녀가 보내 준 사진처럼 서울을 조금만 벗어 나니 남아 있는 안개가 보였다. 강원도에 비하면 덜하지만. 비슷한 풍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운전하는 차 안에서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을 룸미러로 보고 정색하는 나를 발견한다. 사랑 아니 연애 아니 소위 말하는 ‘썸’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나에게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냥 지금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래서 연락해 보고 싶다가도 혹시 방해하는 건 아닌지 하는, 그럼에도 해 볼까?라고 생각이 드는 감정의 널뛰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느덧 도착하고 보니 주차장에 차들이 몇 대 보였다. 정말이지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네…라고 생각하면서.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에 봬요~ 그간 잘 지내셨죠?”

“네 전 뭐 똑같죠 뭐~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ㅋ 사장님은 그간 많이 유명해지셨던데요~”

“ㅋㅋ 덕분이죠~ 저희 거의 처음 오픈 했을 때부터 오셨으니”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저야 뭐 와도 가장 저렴한 커피만 마시고 가는 놈인데 ㅋ”

“그래도 근처에 사시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꾸준히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오늘도 가장 저렴한 커피 드릴 까요?”

“네~ 오늘은 케이크도 하나 주세요~ 아침을 좀 부실하게 먹은 거 같아서요”

“오랜만에 오셨으니 서비스로 드릴 께요~”

“아닙니다 절대 그러시지 마시고요~”

단골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끔 오지만 그래도 단골이 좋은 점이 이런 점인 거 같다. 

‘난 바람 좀 쐬러 종종 오는 커피집 왔어~’ 

나도 그녀에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뭐야? 혹시 여기가 나랑 가고 싶다고 했던 거기야? 혼자 간 거야? 정말 치사한데 ㅡㅡ’

‘ㅋㅋ 아니야 물론 여기도 같이 오고 싶었지만 내가 지난주에 말한 곳은 여긴 아닙니다~’

‘그래? 여긴 어디야? 분위기 완전 내 스타일인데’ 

‘경기도에 있는 커피집이야~ 다음에 한번 같이 옵시다. 나름 사장님이랑 친해서 예약 비슷한 것도 해주니’

‘그래~ 알겠어 난 이제 점심 먹고 슬슬 올라갈 준비 하려고’ 

‘응~ 집에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 

‘알겠어~ 근데 혼자 간 거야? 참 혼자서 잘 돌아다니는 거 같아’

‘음….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이 현재 강원도에 계셔서 ㅋ’ 

‘ㅋㅋ 말하는 거 보래, 알겠어’

“여자친구 생겼어요? 아님 그 비슷한 썸 타는 사람이라도?”

“엥? 왜요?”

“표정에 쓰여 있어요 ㅋ 아무래도 사람들을 많이 보는 직업이다 보니 보면 어느 정도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손님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어두웠는데”

“그런가요?ㅋ 정확하시네요~ 다음엔 같이 한번 올게요.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오호~ 미리 축하드려요~ 다음을 기대하고 있을 께요”

“네네~ 고맙습니다. 잘되야 할 텐데요 ㅋ”


나름 회사에선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다니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인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되는 걸 되게끔 노력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이 없듯이 지금의 내 감정을 숨기는 건 그냥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냥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건 그런데…. 음…. 나에게 일어났던-고작 1번이긴 하지만-이 기괴한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친구 녀석이 말한 대로 잘 이용(?) 할지가 고민이긴 하다. 그놈이 말한 대로 남자들은 연애를 할 때 수도 없이 많은 실수를 한다. 그 실수는 연애의 기간이 길어짐과 비례해서 발생하곤 한다. 나 역시 그런 것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다. 정작 지난주에 고깃집에서 있었던 일만 하더라도 그렇다. 난 분명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녀는 말로는 아니라곤 했지만 서운한 표정이 가득했기에. 그렇다. 여자들은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암튼, 난 현재 두 가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 하나는 그녀에게 언제 고백을 할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능력을 어떻게 현명하게 사용할지. 하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는 이 능력을 사용 안 하게 되는 게 가장 베스트라는 점이다. 그 말은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일 테니. 근데 이 능력은 내가 실수해야지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도 현재로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진짜 일부러 실수를 해서 테스트를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막막할 따름이다. 

이전 09화 #202005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