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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Mar 22. 2024

#20200522

‘일요일에 전시 보고 그 녀석이랑 같이 저녁 먹을까?’

‘누구?’

‘우리 서로 만나게 해 준 슬이 초딩 동창 ㅋ’

‘ㅋㅋ 그래 나름 고마운 녀석이니 오빠가 밥 사줘 그럼’ 

‘알겠어, 내가 전화해 볼게’

‘응 해보고 알려 줘~’ 


연애를 하기로 시작하고 첫 데이트는 지난번에 가고 싶었던 전시를 보는 것으로 정했다. 무용을 기반으로 한 사진전이어서 그녀도 좋아할 것 같았고 나 역시 사람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터라 가보고 싶었던 전시였다. 근데 

때 마침 그녀와 연애를 하게 되어 같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일요일 저녁에 뭐 하냐?”

“형 어쩐 일로 전화를… 일요일이니 집에서 쉬어야지요”

“글쿤 별 약속이 없다는 말이군. 그럼 저녁이나 먹게 나와라”

“형 쉰다는 말 무슨 뜻인지 몰라요? 그냥 집에 있을 거라는 건데”

“응 알아 그러니까 저녁 먹고 들어가서 쉬어 그리 오래 잡아 두진 않을 거니까”

“와… 깡패네… 어디로 가요?”

“을지로에 내가 종종 가는 한우집 있으니까 거기로 와 17시까지”

“한우를? 무슨 일이지?”

“응 몰라도 되고 늦지 않게 와라 예약해 둘 테니”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통화를 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을지로에서 보기로 했어. 내가 종종 가는 한우집이 있거든”

“한우를 사준다고? 굳이?ㅋ”

“응~ 모 사주는 건 핑계이고 슬이랑 같이 먹으려고 하는 거지 뭐~”

“그래 알겠어 그럼 셋이서 보는 건가?”

“아~ 혹시 그 녀석 여자 친구 있는지 슬이는 알아?”

“난 모르지~ 오빠가 한번 물어보고 있다고 하면 같이 오라고 해요”

“그럴까? 불편하지 않겠어?” 

“내가 불편할게 뭐 있어~ 괜찮으니 함 물와봐바”

“응 알겠어~”


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분을 말해 줘서 조금은 놀랐다. 이럴 때 보면 다시 한번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우등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 여자 친구 없지?’

‘질문부터 너무 한데.. 없어요’ 

‘알겠다 일요일에 보자’ 


어찌 보면 우리 둘을 소개해 준 녀석이긴 해도 우리의 사이를 가장 알려 주는 나의 지인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지인이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연인으로써 처음 소개를 하는 건 적잖이 긴장되는 일이긴 하다. 그런 경험을 꽤나 많이 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뭐야? 왜 둘이 손잡고 다녀? 그러지 마 왜 이래 나한테”

“그럼 너한테 그러지 누구한테 그러겠어?”

그녀가 내가 할 말을 먼저 해 버렸다. 우연히 그 녀석이 식당에 먼저 와 있어서 우리가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광경이 연출된 것이었다. 

“뭔데? 이것 때문에 나한테 저녁 먹자고 한 거였어? 왜 미리 말을 안 해 줘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오”

“뭐가 고통이야? 난 단지 너에게 감사의 마음을 한우로 전하기 위해서 부른 거뿐인데”

“아…. 이렇게 난 또 다른 사람 좋은 일만 시켰구먼~ 근데 내가 예상했던 데로 둘이 잘 어울리네” 

“너도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나한테 좋은 사람 소개 해 줬으니”

그녀도 옆에서 나의 놀림을 거들었다. 

“오~ 그럼 나도 한 명 소개해 주는 거야?”

“음… 너 하는 거 봐서, 근데 넌 키가 별로 안 커서…”

“뭐야 그 며칠 동안 형한테 배운 거야? 이런 팩폭은 배우지 마라 제발”

“나? 내가 언제 팩폭을 했다고 하는 거지? 슬이 오해하겠다”

“나 고기 많이 먹을 거야 몰라… 한우로 스스로를 위로할 거야”


서로가 서로를 디스 하면서 시작한 대화는 맛있는 음식과 적당한 술, 그리고 좋은 사람들로 인해 더욱 풍요로워짐을 느꼈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감을 주는 순간이 여러 번 있다. 그중에 나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제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찌 보면 함께 할 때 가장 편한 사람이 아닐까?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아무리 친해진다고 해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로 직급이 조금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끔 하는 정도. 


“그럼 이제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형수라고 부르긴 싫은데”

“걍 부르던 대로 불러라 무슨…그리고 나 엄연히 너 조카의 샘이다. 예의를 지켜라 ㅋ”

“ㅋㅋ 그래 예의를 지켜서 형수님 ㅋ”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데 그녀 역시 저 호칭을 그렇게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워워…. 

남자들이 흔히 해 버리는 생각을 할 뻔했다. 본인 맘에 들면 우리의 손주까지 상상한다는 남자들의 급발진. 하지만 나 역시 비혼주의는 아니니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긴 하다. 꼭 몇 살에 결혼을 해야겠다는 건 없지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이 사람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자제시켜야 할 필요는 있다. 


“형 오늘 잘 먹었고 좋은 구경(?) 했어요”

“구경? 음.... 다음에 둘이 만나면 좀 맞자”

“야 조심히 이 형 남자 막 때린다.”

“난 남자가 아닌데~ 그리고 넌 좀 맞아도 돼ㅋ”

“와… 나 갈래, 갈게요. 간다”

“그래 조심히 가라”


그렇게 그 녀석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첫 번째 입맞춤을 했다. 오늘의 분위기를 그리고 서로의 기분을 몇 마디 말보다 강력하게 표현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보면서 한번 웃고.


“이제 집에 갈까? 아님 좀 걸을까?”

“좀 걷다가 버스 타자~ 날씨도 좋은데”

“그래~”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사람들이 붐비는 을지로 일대를 조금 거닐었다. 마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만 있는 것처럼,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만 주인공인 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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