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런남자 Mar 29. 2024

#20200606

“오빠 우리 음악회 내일 몇 시야?”

“음… 잠깐만~ 6시네. 만나서 간단하게 뭐 먹고 들어가면 되겠다”

“응 그러네~ 오빠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야~ 이런 건 안 맞으면 같이 즐기기 쉽지 않은데”

“나도 잘은 몰라~ 근데 그냥 조금 노력한 정도~”

“노력? 뭐 암튼 오늘은 그럼 뭐 해?”

“아~ 오후에 아는 녀석이 이직 관련해서 뭐 좀 물어보고 싶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

“그렇구나~ 잘 상담해 주고 밥도 챙겨 먹어”

“응~ 슬이는 오늘 레슨 끝나고 집으로 바로 가?”

“응 나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거 있잖아 여자들의 한 달에 한번”

“아….. 그래 내일 달달한 거 많이 사줘야겠다”

“역시 섬세한 내 남친”


그렇게 전화통화를 마치고 난 ‘아는 녀석’을 만나기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아는 녀석이라고 말을 했지만 여자 사람이었다. 그냥 학교 후배 인 여자 사람.

“오빠 잘 지내셨어요?”

“어 넌 어때? 회사를 옮기려고 하는 거 보니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진 않은데”

“뭐~ 회사를 옮기려고 한다기보다는 공부를 좀 더 해 볼까?라는 고민이 더 정확할 듯해요, 그래도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여자친구는 내일 만나기로 했고, 오늘은 나도 한가해서~ 그리고 나한테 이런 류의 상담을 할 정도면 너도 꽤나 고민을 많이 해 봤을 테니”

“아~ 여자친구 생기셨구나. 축하드려요”

“그래 고맙다~ 그럼 근황토크는 이쯤 하고 뭐가 고민인데?”


그렇게 회사 생활 한 5년 정도 한 꽤 많은 직장인들이 하는 고민을 그 여자 후배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 당시엔 본인에겐 큰 고민인 것을 알기에 커피를 마시면서 들어주고 있는데 옆테이블의 앉아 있는 사람 중 한 명의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돌아봤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봤는데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의 대화에 공감하는 직장인이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래 좀 더 생각해 보고 잘 결정해라~ 그리고 인생은 뭐 엄청 길어서 한두 번 정도 잘못된 선택을 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거다. 내가 너 보다 되게 오래 살아본건 아니지만”

“네 알겠어요~ 근데 오빠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아니~ 난 뭐 커피 마시면서 이것저것 같이 먹었더니 딱히 저녁 생각이 없네~”

“네~ 오늘 이야기 들어주시고 좋은 이야기 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기회 되면 답례로 저녁 살게요”

“그래~ 그럼 난 간다”


배가 안 고픈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어 시간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했더니 약간 진이 빠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의 오늘 두어 시간이 그 녀석에게 어떤 결정을 하는데 그렇게 큰 도움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이런 상담 같은 만남은 더욱 진이 빠지게 마련이다. 연애상담과 더불어 하고 나면 헛헛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조금 산책을 하고 적당히 혼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둘러댄 거뿐이었다.

6월의 저녁은 산책하기 꽤 괜찮은 것 같다. 한여름의 열대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의 추위와 해가 짧아서 너무 빨리 밤이 되지 않는.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자연광, 그리고 노을까지. 산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기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난 한여름을 제외하면 모두 산책하는 걸 즐기는 것 같긴 하다.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오빠 학교 후배랑은 헤어졌어?”

산책 중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몸이 안 좋다고 해서 보러 갈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반갑게.

“응~ 안 그래도 슬이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잠깐이라도 보러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야~ 난 오늘은 못 나갈 듯 해. 말이라도 고마워”

“저녁은 먹었고?”

“응 간단히 오빠는?”

“난 산책 좀 하다가 먹으려고”

“근데 오늘 만난 후배가 여자였어? 아는 녀석이라고 해서 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아… 어 여자 후배인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는 녀석이라고 했네”

“그래? 음... 다음부턴 안 그랬으면 좋겠어. 그냥 여자 후배 만난다고 하면 되는 거지. 오빠가 남대를 나온 것도 아닌데 후배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을 수 있는 건데 굳이 그렇게 불분명하게 말하는 거 별로인 거 같아”

“아 미안해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

“오늘 내가 예민한 것도 분명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난 기분이 안 좋았어.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거뿐인데 그렇게 까지 생각하는 건…”

“그래? 내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얼마나 기분이 별로였는데… 아는 동생이 오빠처럼 보이는 사람이 여자랑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데 내가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불현듯 아까 옆 테이블에서 쳐다보던 사람이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이 슬이의 아는 동생이었구나. 근데 그 사람은 내가 슬이 남자친구인지 어떻게 알았지? 지나가다 봤나? 아님 슬이가 내 사진을 보여 준 건가? 등등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궁금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다면”

“하지만 그 와중에도 특별한 사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하길래 내 남자가 선은 잘 지키는구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매우 안 좋다고”

“응 알겠어 미안해 다음부터는 모든 정확하게 솔직하게 말할게”

“당연히 다음엔 또 그러면 안 되지, 그래도 난 아직 기분이 다 풀린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


그렇게 길에 서서 오도 가도 하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폰을 들고서. 그게 오늘 나의 모습이었고, 그들도 오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연애를 하게 되면 적어도 한 번은 겪게 된다는 '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의 시선과 소리에 단절된 체 혼자만 힘들어하는 그런 모습'


조금 걷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이럴 땐 아무것도 안 먹는 것이 상책이다. 비록 밤에 배가 고프더라도.

이전 12화 #2020052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