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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Jun 07. 2024

#20200930

“팀장님 오늘 생신이세요? 축하드려요”

“생신?이라고? 전혀 축하가 아닌 매기는 거 같은데, 암튼 고맙습니다”

“그런가? ㅋㅋ 그만큼 저에겐 어른스러운 분이라는 것이지요~”

“근데 내 생일인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사내 게시판에 사람들은 잘 안 보는데 생일자들이 표시가 돼요”

“그래? 처음 안 사실이네~ 아무튼 고맙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휴가 쓰신 거군요~ 데이트하시나요?”

"몰라도 돼, 개인적인 질문은 삼가해 주길 바란다”


그렇다. 연애를 시작하고 100여 일이 지나고 나의 첫 번째 생일이다. 앞으로도 쭈욱 수십 번의 생일을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일단은 오늘 첫 번째부터 잘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김팀 오늘 오후에 일정이 어떻게 되나?”

“저요? 휴가요”

“아 그래? 그럼 내일 잠시 커피 한 잔 하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지나가던 임원이 뭔가 의미 심장한 얼굴로 질문을 했지만 난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답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나는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13시가 되자마자 바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급히 건물 밖으로 나오려는데 그녀가 로비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일 축하해 남자 친구 직접 보고 말해 주고 싶었어”

“고맙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이 밝은 미소로 나를 보며 웃어 주었다. 특히 오늘은 착장에 더욱 신경을 썼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이뻤다. 나도 나름 신경을 쓰고는 나왔지만 그래도 출근길이다 보니.


“오늘 정말 이쁜데?”

“다른 날은 아니었나 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장난이야~나 오늘 이뻐?”

“응 완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겠어”

“뭐 그러든지 말든지~ 난 관심 없어, 그냥 오빠가 이쁘다고 하면 그걸로 만족해”


말도 참 이쁘게 한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원하는 이성상에 ‘말 이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항상 들어가는 것 같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세상이 변하면서 이성상도 점점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근데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같은 말이라면 당연히 이쁘게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간 그 부분이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조금 밀렸던 것뿐.


“근데 저녁 예약은 몇 시야?”

“아 6시 식당은 우리 집 근처야”

“그래서 부모님 단골이시구나, 하긴 그 동네 좋은 식당들 많이 있지”

“응 일단 점심 먹고 백화점 가자~ 오빠 선물 사야지, 생각해 둔 거 있지?”

“어…. 음…. 아니 진짜 필요한 게 없는데…”

“됐어 그럼 그냥 가서 내가 사주는 거 가져”

“아 근데 오늘 수업은 어떻게 했어?”

“참 일찍도 물어본다. 오늘은 수업 없어, 잘 분배해서 나눠 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게 참 일찍도 물어본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위해 이것저것 배려해 주고 있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손을 꽉 잡았다.

“아.. 아파”

“미안 나도 모르게 손을 너무 꽉 잡았네…”


그렇게 그녀 손에 이끌려 백화점에 가서 코트를 사준 다는 그녀의 말에 거듭 거절해서 나에겐 조금 비싼 느낌의 니트를 샀다.

“결국에는 자기 맘대로 할 거면서… “

“아니 코트는 너무 비싸기도 하고 겨울에 며칠 입지도 못하기도 해. 이제 서울의 날씨에는”

“그래 알겠어 그래도 니트도 오빠한테 잘 어울리니까~”

“응 너무 고마워~ 아껴 입어야겠다”

“뭐래.. 그냥 막 입어 그래야 또 사줄 테니까”

그렇게 카페에 앉아서 오랜만에 평일 오후의 한가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생일 다운 생일을 보내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친구~ 데이트 잘하고 사고 치지 말고 ㅎㅎ’

“오빠 친구? 오늘이 생일인 것도 알고 데이트하는 것도 알고 사고 치는 것도 다 아네 ㅎㅎ 절친이네”

“응? 어… 그러네 ㅎㅎ”

“이제 슬슬 가 볼까? 근데 메뉴가 뭐야?”

“그래~ 오빠 혹시 스위스 퐁듀 먹어 봤어? 하도 이것저것 많이 먹어 봐서 안 먹어 본 게 있나 싶긴 하지만”

“응? 퐁듀? 그 치즈에 찍어 먹는 그 치즈 쭈욱 늘어나는 그거? 안 먹어 봤는데 영상으로만 보고”

“진짜? 다행이네 성북동에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오신 셰프가 운영하는 아는 사람만 아는 식당이 하나 있어 거기 예약해 뒀어 ㅎㅎ”

“좋다~ 맨날 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먹어 보게 되다니~ 슬이 덕택에”


그렇다. 난 호기심과 역마살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경험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 보는 것이다. 특별히 입맛이 까다로운 편도 아니고 편식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리고 미식가도 아니기에.


“안녕하세요 셰프님”

“오~ 오랜만에 오셨네요~ 여전히 미모가 ㅎㅎ 근데 오늘은 부모님과 오신 것이 아니네요. 남자친구?”

“네네 남자친구예요~ 오늘 생일이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오늘 제가 데리고 왔어요”

“아~ 그래요? 그럼 오늘은 더더욱 신경을 써야겠는데요”

그렇게 그녀가 셰프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식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반 식당 인테리어라기보다는 개인 작업실 같은 느낌의 식당이었다.

“근데 여긴 식당이라기보다는 작업실 느낌인데?”

“역시 내 남친의 눈썰미란~ 맞아 여긴 셰프님 작업실이기도 해. 그리곤 저녁에만 예약제로 식당 운영하시는 그런 곳이야”

“아~ 그럼 오늘은 우리만 있는 거야? 좋다~”

“아마도 평일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래도 어차피 많이 못 와 사람들이”

그녀 말을 듣고 둘러보니 내부에 테이블은 우리가 앉아 있는 곳 말고는 하나 정도 더 있는 정도였고 혼자서 운영하시는 곳이다 보니 추가로 테이블을 받아도 음식 제공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근데 주문은?”

“어차피 메뉴가 없어, 그냥 셰프님이 주시는 거 먹으면 되는 곳이야”

“아~ 그렇구나 좋네”

“기본은 퐁듀인데 채소랑 고기, 새우등 나오고 추가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음식이 나오면서 셰프가 직접 먹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생일이라고 와인 한잔도 서비스로 주면서.

“지난번에 오빠가 자주 간다는 카페 다녀오고 나서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했었어”

“아 그래? 왜?”

“그냥 나도 내가 아는 가족 아닌 사람한테 오빠를 소개하고 싶어서 ㅋ 거기 사장님도 그러했듯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중년의 부부께서 식당 안을 보시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시는 걸 봤다. 그녀는 창을 등지고 앉아 있어서 나만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창밖을 보던 셰프가 정신이 번쩍 드는 한마디를 했다.

“어? 부모님 아니신가요?”

“네?”

그렇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고 그때서야 밖에 계시던 분들도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드셨다.

‘오 맙소사… 진짜 슬이 부모님인가 보네’

난 웬만한 상황에선 당황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원래 성격이 무던한 것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머리가 하얘진다’는 느낌이 뭔지 너무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오 웬일이래~ 잠깐만 오빠”

그녀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나 역시 어리바리 주저하다가 밖으로 얼떨결에 나갔다.

“안녕하세요 김준한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슬이한테 말은 많이 들었어요 여기서 이렇게 보네요 반갑습니다”

“뭐야 오빠 많이 긴장했나 본데~ 이런 모습 처음 보는 거 같아”

“어? 응 그래? 그런가 봐”

“아빠 오늘 오빠 생일이라서 내가 여기 예약하고 저녁 먹으러 왔어”

“아 그래요? 생일 축하해요”

“네 고맙습니다”

“그럼 생일 선물로 내가 저녁은 계산해 줄게요”

“아 아니 괜찮습니다. 슬이가 생일선물을 사 줘서 제가 사주려고 했습니다”

“괜찮아요” 하시면서 식당으로 들어가셔서 웃으시면서 셰프와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을 밖에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이와 슬이 어머님이 함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모녀지간, 아주 친한 모녀지간으로 보였다. 마치 쩔쩔매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우린 산책마저 하러 갈게요, 좋은 시간 보내고 다음엔 집으로 한번 놀러 와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갑작스러운 스콜 같은 소동(?)이 지나가고 다시금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시니 다시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뭘 그리 긴장하고 그래~ 우리 엄빠 좋은 분들이야”

“응~ 근데 좋으신 분들인 거랑 긴장하는 거랑은 별개인 거 같아”

“좋으시겠어요~ 음식은 더 먹을 수 있겠어요?ㅋ 추가로 더 계산해 주고 가셨는데”

“아 그래요? 그럼요~ 갑자기 더 배고파지는 기분이네요”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선 셰프까지 셋이서 즐거운 수다를 떨면서 생일을 마무리했다. 깜짝 놀라는 경험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신선함도, 그리고 이 시간 자체가 대단히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대로 집에 안 들어가면 바로 오빠네 집에 가서 잔 걸로 알겠지?ㅋㅋ”

“음…. 그럼 아무리 좋으신 엄빠라고 해도 딸의 남친을 싫어하시지 않을까?”

“ㅋㅋ 그렇긴 해~ 하지만 내일 오빠 출근도 해야 하고 별수 없지. 주말에 밤새 괴롭혀야지~”

“그래~그리고 오늘 정말 고마웠어”

“응~ 나도 행복한 하루였어, 서프라이즈 이벤트까지”

“음… 그건 ㅋㅋ 슬이가 행복했다면 나도 좋아”

“나 들어갈게 조심히가~ 사랑해”

“나도 사랑해, 집에 가서 연락할 게”

그렇게 오랜만에 대단히 긴 생일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의 부모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했다. 다음번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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