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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Aug 02. 2024

#20201018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2020년 10월 18일 Sun 09:02’ 


음… 혹시나 한번 더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잠들었는데. 

이 신기한 경험은 내가 진심으로 원할 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점도 참 신기한 일이긴 했다. 마치 누군가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오빠 어제는 내가 미안~그래서 내가 오늘은 저녁 살게’ 

때 마침 온 그녀의 사랑스러운 문자가 아침부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래~ 알겠어. 몇 시에 볼까?’

‘나 오후에 엄마랑 백화점 다녀와야 해서 그 이후에 봐, 이따 연락할게. 살림 잘하고 있어’

‘응~이따 봐’ 


일단 아침을 먹고 창문을 활짝 열고 창밖을 봤다. 특별히 뷰가 좋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이 기분 좋게 해 준다. 반대쪽 뷰로 이사를 했다면 남산이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여친에게 말했냐?’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어지간히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는지. 

‘어 말했다.’

‘그럼 차였겠네? ㅋㅋ’

‘ㅈㄹ 아닌데’

정말이지 이놈이랑 이런 시답지 않은 대화를 벌써 20여 년째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진짜 안 차였는지 확인 차 전화한 거냐?”

“어? 진짜인 거 같네. 목소리가”

진짜 궁금했는지 친구한테 바로 전화가 왔고 현재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대충은 설명을 해 줬다. 

“음….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은 상태인 거 같네”

“야 그리고…”


그리곤 내가 며칠 전에 겪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줬다. 난 분명히 그녀에게 ‘목요일’이라고 말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근데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진짜 말 안 했어? 하루가 다시 되고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잊은 거 아니고?”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말한 기억이 없어. 거의 하루 종일 생각을 해 봐도”

“그래? 그렇다면 신기한데. 이런 경우는 처음 아니야?”

“그렇지. 내가 그날 아침에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하던지…”

“그런 거 아니야? 바이러스 변이처럼 너의 그 이상한 증상(?)도 변이가 되고 있는 거 아닐까?”

“갑자기 무섭게 왜 이래..”

“그러다가 그 영화처럼 매일 하루를 반복해서 사는 ㅋㅋ”

“이제 끊어야 할 때인 거 같다. 미친놈”


근데 말을 듣고 보니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블랙홀’으로 번역된 영화이다. 내용은 남자 주인공이 특정 하루(groundhog day)를 계속 산다는 설정으로 스스로 삶을 배워 나가고 깨닫는 그런 영화. 

지금으로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늘은 한번 더 기회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냥 오늘의 오늘이니. 


“살림 잘했어? 나도 쇼핑 마쳤는데~”

“응 다 하고 커피 한잔하면서 슬이 연락 기다리고 있었지~”

“잘했어~ 평생 살림은 오빠가 하는 걸로 해~”

옆에서 어머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아직 어머님과 함께 있나 보네~ 옆에서 뭐라고 하시는 거 같네 ㅋ”

“응 혼났어 ㅋㅋ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근데 오빠 오늘 저녁 울 엄마도 같이 먹어도 돼?”

“으응? 어머님도? 그럼 괜찮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평생 겪을 머리 백지화 현상을 요 몇 달 동안 다 겪고 있는 느낌이다. 

“오~ 좋았어 ㅎ 그럼 밥은 울 엄마가 사준 다고 했으니 식당은 오빠가 정해서 알려주어~”

“아 그래 알겠어~ 어머님은 어떤 거 좋아하셔?”

“울 엄마는 중식이 먹고 싶으시다는데 ㅋㅋ”

옆에서 또 뭐라고 하시는 것 같은 거 보니 그녀가 중식이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알겠어 예약하고 위치 연락 해 줄게~ 아 차 가지고 나오셨어?”

“역시 센스 쟁이네 우리 오빠는~ 아니 올 때 아빠가 태워다 주시고 가 버리셔서 오늘은 없어~”

“알겠어 그럼 이따 보아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머리를 최대한 돌리기 시작을 했다. 내가 아는 중국집들을 모두 검색해서 일단 오늘 영업을 하는지 확인을 하고 가장 적당한 곳으로 골랐다. 그리고 다행히 예약이 가능해서 예약까지 마무리.

머릿속에 꽤나 많은 식당들 db 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대단히 뿌듯해하면서 그녀에게 위치와 시간을 알려 주고 나 역시 적당히 씻고 모자 쓰고 나가려고 했던 생각을 과감히 집어치우고 욕실로 뛰쳐 들어갔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머님께 드릴 꽃다발도 하나 사서 오느라 늦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밥을 먹은 적은 있었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 가물 할 지경이다. 게다가 오늘은 부모님 두 분과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닌 그녀의 어머님만 계시니 더욱 긴장이 되었다. 딸과 어머니는 가감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와중에 그녀와 그녀의 어머님이 보였다. 나는 무조건 반사 반응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자리에 둔 꽃다발이 떨어질 뻔할 정도로.


“안녕하세요 김준한입니다. 지난번에 잠깐 인사드리고 오늘 다시 인사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그날 잠시 뵐 때 보다 그녀가 어머님을 많이 닮았다고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어 오빠 이거 내 거야? 웬 꽃다발? 오늘 무슨 날인가??”

“아.. 어 그거 어머니 건데 슬이는 다음에 사 줄게”

“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고마워요~ 울 남편한테도 못 받는 꽃다발을 딸 남자친구한테 받네요”

“좋겠네 울 마미~”


그렇게 나름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난 음식이 입으로 들어 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이런 진부한 표현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도 딱 들어맞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 아닐지. 그리고 이 보다 좋은 표현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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