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늘 칼퇴할 수 있어?’
점심을 먹고 산책 중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님과 식사 이후 후기를 통화로만 들었을 뿐 자세한 이야기를 하진 못해서 조금 궁금하기도 했었다. 통화 상으로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 준다고 만 했을 뿐.
‘응 나야 뭐 언제나 칼퇴주의 자니까~ 저녁 같이 먹을까?’
‘그럴까 하고 연락했지~’
‘그래~ 회사 앞에서 볼까? 아님 다른 장소에서?’
‘일단은 회사 앞 카페에 있을게. 그 이후에 다른 곳으로 가던지 해요’
‘알겠습니다~ 산책 마무리 하고 슬슬 들어가야겠네. 칼퇴를 하려면 더더욱 일을 열심히 하는 척해야겠어’
‘ㅋㅋ 할 수 있음 해봐~’
자리로 돌아와 보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퇴사하기 전에 저녁이나 같이 합시다’
‘저녁이요? 점심으로 하시지요’
‘참 빡빡한 사람이네 ㅎㅎ 내가 괜한 오퍼를 한건 아닌지 모르겠네’
‘오퍼 취소 하셔도 괜찮습니다 ㅋㅋ’
‘그럽시다 그럼 이번주에 점심합시다’
‘네 그럼 내일 하시지요, 이번주라고 해 봐야 내일뿐이니’
‘오케이’
아마도 다음 주엔 연차로 소진하고 퇴사를 해서 이번주가 마지막 근무인 거 같다. 자세한 건 내일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일단 칼퇴를 해야 하기에 서둘러 일을 처리했다.
“팀장님 오늘 처리할 일이 많으신가요?”
팀원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오늘? 오늘은 시간이 좀 애매한데. 급한 건가요?”
“아니요 그냥 면담 좀 하려고요 그럼 내일 편한 시간 알려 주세요”
“그래요 내일 커피 한 잔 해요”
‘오늘 이래저래 찾는 사람이 많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마무리하고 칼같이 퇴근을 했다. 회사 건물을 나서니 그녀가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커피집에 들어가 그녀 앞에 앉을 때까지 그녀는 계속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잠깐 통화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잠시 화장실 가면서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왔어~ 미안 학부모가 전화가 와서”
“괜찮아~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좀 전에 왔는데 딱 커피집 들어오는데 전화가 와서”
“응~ 이야기는 잘했고?”
“음… 아마 만나서 다시 이야기해 봐야 할 거 같아. 엄마가 욕심이 좀 많아서”
“어려운 문제네 쩝”
“응 자주 겪는 일은데 겪을 때마다 쉽지는 않은 거 같아 암튼 뭐 먹지?”
“오랜만에 초밥 먹을까?”
“오 좋아~ 역시 일은 안 하고 저녁 뭐 먹을지만 생각했나 봐 ㅋ”
“응 비슷해~ 갑시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나는 조심스레 물어봤다.
“뭐라고 하셔?”
“뭐를? 아~ 우리 엄마가?”
“응 궁금하긴 했는데 슬이가 만나서 이야기해 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ㅋㅋ 울 엄마가 오빠 싫어하면 어떻게 하게?”
“생각도 하기 싫지만 그러시다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오~멋진데ㅎ 근데 울 엄마는 오빠가 꽤나 맘에 드신 모양이야 ㅎ 역시 꽃선물이 주요한 전략이었는지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데? 기특해ㅋㅋ”
“아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도 잠시 바로 그녀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역시 울 엄마도 오빠가 이직을 하려고 한다는 점은 조금 우려하고 있긴 해.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무용계가 그다지 넓지 않거든 대부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고. ‘누가 어떤 사람이랑 결혼했다고 하더라’라고 하는 소문이 상당히 빠른 곳이거든”
나도 대충은 듣고 주변을 봐서 알고는 있다. 특히, 예체능 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사람들과 결혼을 하는지. 물론, 예외도 있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 일 수 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도 나의 여자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들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좀 어려운 부탁 하나 해도 될까? 근데 꼭 들어줬으면 하긴 해”
“….. 그래 가능하면 들어줄게”
“이직하고 나서 1년 정도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지금 회사 아님 비슷한 회사로 다시 이직했음 해”
상당히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부탁이긴 했다. 나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본 후 아니다 싶으면 다시금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이 대충 3년 정도면 사이즈가 나오기 때문에. 그전에 사라지는 것이 부지기수이지만.
“음…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1년은 조금 이른 거 같긴 한데…”
“난 1년이면 될 거 같은데… 오빠가 더 잘 알겠지만 그래도 1년으로 해 줬으면 해”
“알겠어 슬이 부탁이니 그렇게 할게”
“휴…. 고마워 나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오빠가 들어줄까 말까 를 100번도 더 고민한 거 같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처음 회사를 옮기려고 한다고 그녀에게 말했을 때 느꼈던 서운한 감정이 실망감으로 변했던 것이. 그리고 앞으로 이런 나의 심경의 변화가 내 행동에 꽤나 변화를 주게 될지 이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