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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Aug 23. 2024

#20201101

‘나 이제 출발한다~ 피자 사서 갈게’


그녀의 문자 알림음에 겨우 눈을 떴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11시 정도. 

‘대충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 2시 정도면 될 듯 하긴 해’

‘아 그럼 점심사서 내가 오빠 집으로 갈 께. 먹고 일 마치고 영화 보러 갑시다~”

‘응 알겠어~ 그럼 내일 봐~’ 


눈을 뜨고 다시 문자 창을 올려 보니 어젯밤에 나눈 대화 내용이 나왔다. 그리곤 천장을 멍하니 보면서 멍 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오전에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오늘은 여느 일요일 같지 않게 더 늦게 일어 나 버렸다. 특별히 더 피곤하거나 어젯밤에 술을 마시고 잔 것도 아닌데. 

그녀에게 연락해서 오지 말라고 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 보니 이미 피자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해맑은 목소리를 들었을 뿐.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서 랩탑을 열고 처리할 일들을 해 나갔다. 대충 봐도 3~4시간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3시에는 나가야지만 극장에 갈 수가 있다. 그렇게 일은 시작도 못하고 어리바리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집 앞이라는 문자가 왔다. 


“일 하고 있었어? 오빠가 집에서 일을 다 하다니~ 놀라운 일이야 ㅎㅎ”

“그러게나 말이야~ 아침은 먹고 온 거야?”

“뭐 그냥 두유 하나 먹고 어차피 오빠랑 피자 먹을 거니까~”

“그래 그럼 배고플 테니 일단 먹을까?”

“좋아~”

그렇게 피자를 먹는데 피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은 대단히 복잡했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빠르게 할 수 있을까? 영화를 취소할까? 아니면 한만큼 보내고 주중에 추가적으로 해서 보낼까? 등등.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한 마디 했다. 

“피자 먹으면서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면서 먹어? 맛 분석이라도 하는 거야?”

“아 아니~ 처리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 좀 하고 있었어”

“이봐 이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데이트할 때 나한테 집중 못할 줄 알았어 ㅋㅋ”

“응? 아니야~ 그럴 리가, 피자 어디서 산 거야? 맛있는데~”

“에이 아니긴~ 말 돌리지 말고”

“아니야 그런 거 그냥 빨리 하고 나가야 하니 조금 생각을 했나 봐~ 남자는 멀티가 잘 안 되잖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거네~ 나한테 집중 못한 거~”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먹자”


나도 모르게 쌀쌀맞게 답을 하고 말았다. 말을 뱉자마자 바로 알아 버렸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아니했어도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해야 할 일 많으면 그냥 피자 먹고 난 집에 갈게. 영화는 다음에 보던지 하지 뭐”

“아니야 미안 그렇게 말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미안해”

“아니 나도 아니야 계속 일 생각하는 오빠랑 같이 나가서 영화 보고 하는 거 나도 불편해. 그러니까 난 갈 테니까 해야 할 일 있음 마저해”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계속해야 할 일이 떠오르는 나 자신이 별로라고 느껴졌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건 사실이었다. 이러는 동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나 갈게 일 열심히 해”

“미안해 기분상하게 해서”


어떤 대답도 없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코트를 들고 가버렸다. 나 역시 아무 말 못 한 체 그녀가 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덩그러니. 따라나가지도 못한 채 멍청하게. 

일단, 일을 마치고 그녀한테 가는 걸 선택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급하게 책상에 앉아서 랩탑을 켜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난 평소에는 벼락치기를 잘 못하는 성향이다. 무언가를 급하게 닥쳐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때 느껴지는 졸리는 느낌을 싫어한다. 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닥쳐서 해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거의 마무리할 때쯤 시계를 보니 무섭도록 정확하게 3시간이 흘러 오후 3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그때서야 허기가 져서 주방에 가서 서서 그녀가 사 온 식은 피자를 먹고 커피를 한 잔 탔다. 그리곤 그때가 돼서야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를 하면 받지 않을 것 같다는 겁쟁이 같은 생각으로. 


‘오늘은 정말 미안해 이따가 동네로 갈 테니까 저녁 먹자’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금 랩탑 앞에 앉아서 일을 마무리하고 처리한 것들을 업무용 메신저에 업로드를 해 둘 때쯤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늦었어 오늘 저녁에 엄마랑 영화 보기로 했어’

‘아 그래? 오늘 나랑 보려고 했던 영화 보려고?’

‘어 보고 싶은 영화였으니까’

‘미안해 정말….’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어?’

‘응 좀 전에 다 해서 보냈어’

‘그래 그럼 일요일에도 일 하느라 고생했는데 쉬고 내일 만나’

‘응 그래 알겠어 내일 맛있는 거 먹자. 다시 한번 미안해’


그렇게 그녀와 메시지를 마무리하고 불현듯 마지막에 그녀가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 만나’ 

내일은 월요일이니 퇴근하고 나서 만나자는 거구나. 근데 내일 슬이가 오후에 수업이 없는 날이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챙겨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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