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벌남

스물한번째 억지

by 그런남자

요즘엔 많은 질타 섞인 계몽과 교육으로 그 수가 좀 줄어든 거 같지만 여전히 어딘가엔 존재하고 있다. 쩍벌남. 공공장소, 특히 지하철에서 앉은 체 자신이 다리를 90도 이상 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쩍벌남이라고 통칭해서 부르지만 여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수가 적고 공공장소에선 극히 조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잘 보이진 않을 뿐. 하지만 남자들은 그 수도 많은데 공공장소에서 조심하는 경향도 없다. 그렇기에 한때는 대단히 배려 없고 무지한 공공장소의 행태로 질타를 받았었다. 그래서 쩍벌남을 응징하는 방법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오늘은 남자에 한해서 즉, 쩍벌남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 보겠다. 젊은 남자들도 쩍벌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상당수는 중년 이상의 남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보인다. 남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지하철 혹은 버스처럼 바로 옆에 모르는 누군가가 앉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이런 쩍벌을 시전하고 있으면 옆 사람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세트로 선사하는 행동임에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쩍벌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고백을 하자면 몇 년 전에 비해 나 역시 조금은 쩍벌을 하고 앉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조심을 하지만 그냥 책상에 앉아 있다 던 지 커피집에 앉아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쩍벌로 앉아 있음을 인지하고 다리를 모은 적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난 다리를 꼬고 앉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쩍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긴 하다. 암튼, 여러 가지 불편함을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쩍벌남 역시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1. 편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더더욱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렷'이라는 자세가 불편한 자세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차렷'이라는 자세는 인간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야지만 가능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인 것이다. 그에 비해 '열중쉬어'는 '차렷'에 비해서는 조금은 편한 자세이다. 자세의 명칭에서 '쉬어'가 괜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님을 자세의 편함 정도로 말해주고 있다. '차렷' 자세와 '열중쉬어' 자세의 불편함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다리의 위치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열중쉬어'는 '차렷'자세와는 달리 본인의 어깨너비만큼 다리를 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너무 벌려도 불편하다. 딱 본인의 어깨 너비 정도가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서 있음에 있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못하지만 좌식문화에 영향으로 남자들은 주로 바닥에 앉을 때 소위 '양반다리' 혹은 '아빠 다리'라고 불리는 자세로 앉는다. 그 자세가 허리와 고관절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와는 무방하게 그 자세를 편하게 느낀다. 근데 자세만 놓고 보면 의자에 쩍벌로 앉는 것과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는 것은 묘하게 닮아 있다. 다리의 위치를 아래로 늘어뜨리느냐 아니면 접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이렇게 '양반다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더라도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본인이 편한 자세로 그냥 앉아 있는 것뿐이다. 근데 그 장소가 공공장소였던 것뿐.


#2. 집중하다 보니 다른 걸 신경 못 쓴다.

위에 쓴 이유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다 보면 다른 것에 신경을 못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남자는 여자보다는 멀티가 안된다는 속설이 있지만 난 그 말을 100% 믿지는 않는다. 남자가 멀티가 안된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보다 안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정말 멀티를 못하는 여자 사람도 꽤 있기 때문에. 암튼, 무언가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것에 신경을 못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불편한 자세보다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게 마련이다. 불편한 자세라는 건 신경을 써서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에. 책을 보고 있다던지, 본인의 폰을 보고 있다던지, 혹은 누군가와 수다를 하고 있다던지.


#3. 세월의 힘을 이기기 힘들다.

대단히 슬픈 말이긴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년 남자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것과 관련이 있다. 꾸준히 근력운동 특히 하체 운동을 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체의 근손실이 있게 된다. 특히 회사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일을 하게 되고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체 근육 중 허벅지 안쪽 근육을 내정근이라고 부른다. 내정근에 힘이 있으면 쩍벌의 막아 준다. 자세 교정을 위해 소위 말하는 코어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내정근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점점 쩍벌을 막아주는 힘 마저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월을 힘을 이기지 못한 증거의 하나로 쩍벌이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하면 힘을 주고 있어야 하는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난 지하철을 거의 안 타는 편이다. 요즘 들어 몇 번 타면서 관찰을 해 본 바로는 쩍벌남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나 역시 한순간 정신을 놓으면 쩍벌을 한 체 앉아 있곤 한다.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하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의 힘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힘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놓으며 안 된다. 하지만 누구나가 한두 번 정도는 정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어디선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쩍벌남을 본다면 한번 정도는 눈감아 주면서 무언가 하나를 놓쳤구나 라고 생각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그것이 세월이던, 근육이던, 혹은 정신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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