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못 하는 사람

스물여섯 번째 억지

by 그런남자

오늘도 자기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난 거절을 잘하는 편이다. 무턱대고 거절을 한다기보다는 들어보고 나의 노력과 능력 밖 혹은 내가 노력하고 싶지 않은 부탁이라고 한다면 바로 'no'라고 말을 한다. 거절 역시 사과와 고백과 비슷하게 말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잘못을 한 혹은 인지한 그 즉시가 가장 좋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불과 몇 분만 지나도 사과의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거절의 의사 표현 역시 이와 비슷한 거 같다. 어떤 제안, 부탁, 혹은 행동에 대해서 가능하면 즉시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 역시 기본적인 성격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답답해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리곤 거절하지 못한 부탁들 때문에 정작 본인이 해야 할 것 들에는 소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는 본인 주변에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 한 두 명 정도는 떠오를 것이다. 혹은 본인 스스로가 그런 사람 일수도 있고. 일전에 썼던 결정을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둘 다 잘하는 나는 이것이 작은 것부터 연습을 하면 충분히 고쳐진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당사자들에겐 그 시작이 너무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하루아침에 갑자기 뭐든지 다 들어주던 사람이 거절을 하기 시작한다면 주변 사람들 역시 낯설어하거나 혹은 자기네들끼리 험담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저 사람 변했다고. 어떻게 하든 난감한 상황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거절을 잘 못하는지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그냥 그게 편하다, 게다가 좋아한다.

대단히 어려운 일 혹은 본인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조금 더 무언가를 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게다가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해결해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이런 경우가 있긴 하다.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두 명 그리고 여자 친구가 무언가를 부탁한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실례로 내 친구 중 한 명이 결혼을 할 때 나는 내 친구의 스튜디오 촬영에 직접 피자를 배달해 줬고 결혼식 사회를 봤다. 그리고 신혼여행 전날 서울에서 하루 묵고 가는 일정이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내 친구 부부가 예약해 둔 호텔 룸을 업그레이드해 줬으며 예식장에서 호텔까지 운전도 해 줬다. 당시 내 친구가 나에게 부탁한 것은 결혼식 사회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일들은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었다. 비록 부탁한 적은 없지만. 이처럼 누군가의 부탁을 해결해 주는 것이 거절하는 것보다 편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상이 특정 소수인지 혹은 특정 다수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2. 소심한데 생각도 많은 편이다.

아마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이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나한테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내가 거절하면 상대방이 상처 받진 않을까?라는 생각. 혹은, 위에서 말한 대로 거절의 의사 표현 자체를 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말을 못 하는 경우 등. 이 모든 것이 성격이 소심해서 그렇다고들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지만. 암튼,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부탁을 듣는 그 순간부터 전전긍긍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그 부탁이 본인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이면 더욱더. 본인의 생각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소심하면서 이런 사람은 생각 또한 대단히 많은 편이다. 누군가가 부탁을 하면 그 시점부터 본인이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나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내가 안 들어주면 저 사람은 또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또 용기를 내야겠지?' 등등. 조금은 비약이 심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들을 대단히 빠르고 많이 한다.


#3. 말로 해야 해서 그럴 수 있다.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성격이 소심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모든 이야기들을 주로 텍스트 혹은 이모지로 하고 전화 통화하는 것 자체에 포비아가 생기는 시대에는 그냥 말로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건 성향이나 성격 문제는 아니라고 봐진다. 그냥 거절뿐만 아니라 말로 하는 것이 모두 부담스러운. 그래서 이별도 문자 혹은 카톡으로 하는 병폐가 발생하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누군가 이메일 혹은 문자 등 텍스트의 형태로 무언가를 요청했고 똑같이 텍스트의 형태로 답을 해도 무방한 상황이면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거절을 할 수도 있을 수 있다. 만약에 채용과 관련해서 거절을 말하는데 지금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문구들인 '귀하의 자질은 우수하나 한정된 인원으로 인해 블라블라'를 채용 담당자가 지원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말을 해야 한다면 그 말을 전달해야 하는 당일 채용담당자는 죽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처럼 거절은 말로 하는 거 자체가 어려운 사항인 거긴 하다.


내가 거절을 잘한다고 해서 내가 거절을 많이 안 당해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하다. 난 무조건 내 또래들에 비해 더 많은 채용 거절을 당했고 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해 봤다. 왜 무조건이라고 이야기하냐면 내 또래들에 비해 훨씬 많은 회사들에 지원을 했고 내 또래들 중에는 호감을 가진 이성에게 호감을 표시할 수 없는 기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거절을 당하다 보니 거절에 대해 무뎌진 부분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거절도 해 버릇하면 거절하는 행위 자체가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상처는 거의 받질 않는다. 나의 기대와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알겠다'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본인이 거절을 잘하지 못해서 본인의 삶이 피곤한 사람들은 눈 딱 감고 10번만 거절을 해 보라고 말해 보고 싶다. 물론, 절대 쉽지 않다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본인의 삶이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그러니 속는 셈 치고 10번만 해 보시길 간곡히 권해 본다. 그리고 항상 거절의 타이밍은 누군가의 부탁의 말이 끝난 후 3초 안에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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