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미팅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요? 사기 아님. 옥장판 팔이 아님. 보험 광고 아님.”
수상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기도, 옥장판도, 보험도 아니라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수상한 메시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메시지 하나가 은퇴한 유튜버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한 달 뒤 2022년 6월 26일. 이 날은 기다렸던 팬 미팅 날이다. 한 달을, 혹은 3년을 기다린. 그것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팬 미팅이다. 부산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무언가 기대하는 웃음으로.
채널의 셔터를 내린 지 3년. 유튜브를 함께한 M에게 연락이 왔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팬 미팅 요청을 받았단다. 뒤늦게 입덕한 ‘늦덕’에게서 우연히.
‘평소에 유튜브를 잘 보지도 않고, 구독하는 채널도 없는데 우연히 봤다가 모든 영상을 두 번씩 보고... 부산 사투리의 매력에 빠져버렸습니다. 지금도 그 텐션 그대로인가요?’
덕후 중에 가장 슬픈 덕후는 늦덕이라고 했던가. 이미 문 닫은 채널에 보내준 열렬한 사랑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마음의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만났다. 늦은 팬 서비스라고 생각한 팬 미팅. 도리어 그녀가 우리를 완전히 생경한 세상으로 데려갔다.
밥 사주고 싶다는 어른들의 댓글은 꽤 받았는데, 정말 밥을 사준 동생 팬은 처음이었다. 우린 그냥 좋아했다. 영상을 만들고, 웃음을 주는 일을.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의 팬은 만나자마자 쇼핑백을 들이밀었다. ‘사랑합니다. love you more than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어버이 은혜를 떠올리게 하는. 부끄러우니 집에서 뜯어보라는 당부에 쇼핑백을 옆에 끼워두고서 말문을 열어보려는데. 맞은편에 앉아 우리를 관찰하는 눈은 고이 접어둔 희극 욕심에 불을 지폈다.
‘와. 신기하다 진짜 영상이랑 똑같다...’
그렇게 말하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곤 그런 생각을 했다. 구독자 3,500명, 조회수 60만이라는 숫자 뒤에는 이렇게 뜨겁게 봐준 눈이 있었구나. 정말 실존하는 사람들이었구나. 우리도 잊고 있었던 영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울렁거렸다.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영상으로 얻는 수입이나 광고보다 정말로 원했던 건 이런 마음 하나였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영상에 나왔던 성대모사를 들려주고, 비하인드를 이야기하고, 촬영 때 찍은 사진을 보였다. 팬을 만나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이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 것도, 다시없을 신비한 경험이었다.
유튜버라 불리던 시절. 구독자에게서 응원의 메시지 받을 때면 어느 날엔가 그들과의 만남을 꿈꿨다. 하지만 그때가 폐업 후일지는 몰랐다. 도스토옙스키는 시간이 가면 꿈이 실현된다고, 하지만 변하거나 알아볼 수 없을 거라 했단다. 아마 이날이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알아보지 못했지만 바랜 꿈이 실현된 날. 잊고 살던 마음속 불씨를 발견한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M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참 고맙고, 신기하고, 추억이 떠오르는 날이라고. 연신 울렁이는 마음을 눌러 담으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잘 참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편지 세 장에 무장해제 됐다. ‘뭘 해도 해낼 것 같은 능력 최고치의 인간이라고 보입니다만... (중략) 제가 앞으로도 쭉 언니들 팬 하고 응원할게요. 사랑해요’
이제 유튜브는 해볼 만큼 해봤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늘 우리의 현재이고 싶었던, 하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이 된 채널을 보며. 그리고 가끔 끓어오르는 아쉬움을 묻어두며. 성공하지 못했기에 외면하고 싶었던 시간은 마치 이날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이 실은 모두 실패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려고.
뮤지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커튼콜을 볼 때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안녕이라며, 각자의 시간을 살아갈 때라며. 하지만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나면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아 내심 서운했다. 우리 구독자들도 그런 맘이 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엔딩 없이 끝나버린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고 싶어졌다. 우리의 커튼콜을 준비해야겠다. 엔딩 크레딧 뒤에는 언제나 커튼콜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Thank you and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