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유튜브 다시 할 생각 없어?”
“언니 유튜브 해 볼 생각 없어요?”
나를 알거나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유튜브를 할 때 눈이 빛나던 날 알기에 하는 말이고, 채널 운영에 진심이던 날 몰라서 하는 말이다. 유튜버를 하기 전엔 자주 말했다.
“언젠가 유튜브는 한 번 하지 않을까?”
이제는 쉽게 답할 수가 없다. 영상을 향한 애증과 애정이 한 덩이로 뭉쳤기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고서도 미디어와 연을 끊을 수 없었다. 영화제 계약직 홍보팀으로 일하면서는 홍보 영상에서 연기하질 않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며 신문 지면에 나오질 않나, 야구 직관을 보러 갈 때마다 중계방송에 잡히질 않나... 더는 찍거나 찍히기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영상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셈이다.
실은 여전히 사랑한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프레임 속에 서는 일도, 피사체를 들여다보는 일 모두. 사랑하는 만큼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영상만 한 아름 가득 끌어안고 싶다고. 하지만 가볍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사람들에게 일장 연설 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가뿐히 대답해 왔다.
‘편집이 싫어서’
편집이 싫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말 그대로 영상 편집이 싫다는 뜻이고, 프레임 속에서 편집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1분짜리 영상을 1시간 넘게 들여다보고, 화면 속 내 모습을 반복적으로 돌려보고, 영상을 앞에 넣을지, 뒤에 넣을지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 난 편집이 싫다. 다시 편집에 매진하기엔 성미가 너무 급하다는 걸 이제 알아버렸다.
가뜩이나 신난 내 모습 보기가 부끄러운데, 들뜬 목소리를 여러 번 돌려보는 건 신물이 난다. 10분짜리 영상을 10시간 동안 돌려보고 있노라면 토라도 할 지경이다.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지루한 편집 노동을 이겨내야 하는 거다.
유튜버를 소망하는 꿈나무들에게는 절망적인 이야기지만... 1분짜리 영상을 위해 같은 장면을 50번은 돌려볼 수 있을지 고민해 봤는가? 그것도 방송용 자아를 찍은 영상을. 친구들과 함께 유튜브를 했을 때는 편집할 양도 1/3이었는데, 혼자서 다시 유튜브를 한다면... 대표이자, 카메라 감독이자, 출연자이자, 편집자이자, 채널 운영자이자, 디자이너가 오로지 나다. 오롯이 혼자다.
프레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영상으로 사람을 속이고 싶지 않다는 말. 시청자는 결국 영상에 찍힌 순간의 나를 지켜볼 뿐이다. 2시간짜리 영상에서 이곳저곳을 잘라내고, 전체의 화면에서 일부만을 크롭 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첨가한...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사람을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단편 영화를 만들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영상이 애증이 된 이유다. 진솔해지려 할수록 카메라 앞에서만 솔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리얼해도 24 프레임으로 찍힌 영상은 1초에 24장의 사진을 이어서 만들어졌을 뿐이다. 우리의 1/24초의 사진으로 편집한 영상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로운가. 우리는 얼마만큼 솔직한가.
직장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끔 유튜버라는 이름이 그립다. 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가 자체 결재로 이뤄지던 때가. 하지만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며 여전히 유튜버 복귀를 미룬다. 이렇게 읊조리며.
“편집이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