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부님의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간결했습니다.
배달 음식은 플라스틱 포장재 증가와 음식물 쓰레기 탄소 배출로 자원 낭비, 해양오염, 기후 변화 등 환경 부담을 키웁니다.
여러분 배달 음식 좋아하셔요?
밥 하기 싫으면 운동 삼아서 식당에 가서 먹고 오셔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많은 생각거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요즘 날이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12월 들어서면서 정말 ‘겨울이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종일 지내다 집에 돌아오면 꼼짝하기조차 싫습니다. 밥을 하기는커녕 외식하러 나가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죠. 저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귀찮고 힘들 날, 때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곤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집에만 머무르다 보니 포장 용기는 그 이전의 몇 배로 쌓였습니다. 점점 불어나는 산더미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전엔 무심하게 보던 플라스틱 짜장면 그릇, 기름이 스며든 종이 상자, 쿠킹 포일에 쌓인 치킨, 국물 음식을 담는 올록볼록 홈이 파인 플라스틱 통까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배달 음식 용기가 담긴 비닐봉지까지 더하면 일주일에 서너 번만 주문해도 매주 아파트 재활용 분리배출 마당이 가득 찼습니다.
매주 재활용품을 들고나갈 때마다 느꼈던 그 불편한 마음이 저와 제 가족의 생활을 바꿔 놓았습니다. 몸이 찌뿌둥하거나 바빠서 제대로 식사 준비를 못 하는 날에는 식구들과 시간을 맞춰 동네 음식점을 찾습니다. 네 식구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서 ‘동네 맛집 순례’를 하는 셈입니다.
집에서는 차려놓은 밥을 먹자마자, 텔레비전에 시선을 뺏기거나 각자 방으로 흩어지지만, 식사하러 나갈 때면 함께 걸어갑니다. 집에선 잠시도 떼어놓지 못하던 스마트폰은 잠깐만 주머니에 넣어두기로 합니다. 하늘의 구름을 보고 날씨를 맞춰보기도 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예쁘다고 유난을 떨기도 합니다. 남편과 나는 앞서 걸으며 그간 미처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애태우던 일이나 낮에 본 재미난 유튜브 영상을 나누곤 합니다. 뒤따라오는 아들딸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저희끼리 키득거립니다.
메뉴 선택도 재미를 줍니다. 때론 미리 메뉴를 골라 정해 놓은 식당으로 가지만, 식당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음식점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우리 식구는 모두 내향형이라 메뉴를 고르느라 애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같은 음식을 고르기도 하지만 때론 모두 다른 메뉴를 고르기도 합니다.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음식을 골라 서로 놀라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그걸 골랐는지 서로 묻다가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고 때론 그런 걸 왜 궁금해하느냐며 한 명이 토라지기도 합니다.
식구 중 누군가 혼자 준비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저 당연하게 받아먹는 식사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나누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 달에 서너 번 하는 외식 날은 이제 우리 가족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배달 음식을 줄이고 식당에 가니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시켜 먹을 때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지만, 먹고 나서 함께 걸으며 운동도 하고 집에서는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물론 배달 음식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습니다. 떡볶이는 용기를 가져가서 사 오지만, 치킨은 여전히 시켜 먹습니다. 그럴 땐 ‘일회용 수저, 포크 안 받기’를 기본값으로 설정합니다. 소스나 단무지를 빼고 주문할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배달업체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지난가을 ESG 친환경 대전에 갔다가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가 다회용기로 배달하고 수거는 전문 업체가 맡기 때문에, 고객은 전처럼 주문하고 다 먹은 뒤에 문 앞에 용기를 놓아두기만 하면 됩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기업 간 협업으로 상생하는 방법이라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자리 잡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니까요. ‘편하게 살려고 배달하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쓰레기 산이 커져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늦기 전에 우리가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입니다.
*덧붙이는 글: ESG 친환경 대전은 지난가을 9월 24일~26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렸던 친환경 박람회입니다. ECO FRIENDLY GREEN INDUSTRY GREEN PRODU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