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회사에서 조퇴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길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아유, 학생이구나, 그냥 가.”
그 말이 걸렸나 보다. 평소에도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 때문에 나이보다 어리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 그 순간 어리다는 그 말이 나를 멈춰 서게 했다.
“학생 아니에요! 회사 다녀요.”
그 여자는 순진한 먹잇감을 찾은 듯 ‘밀당’의 화신으로 변했다. 내 옆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사근사근한 말투로 무언가 좋은 걸 주겠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따라갔다. 한편으론 모르는 사람을 그냥 따라가도 되나? 내 안의 이성과 본능이 으르렁거리며 싸웠지만, 그날의 자아는 본능에 손을 들어주었다.
길을 따라 50미터 정도 갔나 보다. 그 여자가 멈춰 섰다. 나와 그 여자 앞에는 봉고차가 한 대 서있었다. 잠깐 타라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귀신에라도 씐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제정신이라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차에 타라고 하는데 덥석 올라탈 리가 없다. 늘 다니던 길이고 아직 해도 멀쩡히 떠 있어서 경계를 늦췄던 게 큰 실수였다.
차에 오르니 그 여자가 그릇 카탈로그를 보여주었다. 오늘 특가로 판매하는 거란다. 공기와 대접, 접시 세트를 사면 냄비 세트와 곰솥까지 준다고 했다. 당시에 지금 남편과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고 있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올라탄 차에 시동이 걸려 있다는 거였다. 내가 잠깐 정신이 돌아와서,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했더니, 여자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바로 차 문을 닫고 출발할 기세였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나고 머릿속엔 납치되어 팔려 가는 상상까지 펼쳐졌다.
여자들을 잡아다 멸치잡이 배에 태워 보낸다는 인신매매범들의 뉴스를 자주 봤던 터라, 눈물이 나려고 했다. 너무 무서웠다. 지금으로 치면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이재훈 주연의 <모범택시>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피해자들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반강제로 사인을 했다. 그제야 자동차 시동 소리가 잦아들었다. 여자는 웃으면서 며칠 있으면 선물처럼 배달이 될 거라고, 혼수로 ‘딱’이라며 내가 계라도 탄 것처럼 말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나 속았다는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어떻게 말할지가 문제였다. 물건이 오면 바로 알아차릴 테니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집에 가는 내내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달리 쭈뼛쭈뼛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눈치를 챘다.
“무슨 일 있어? 할 말 있냐?
”아니, 저, 그런 게 아니고…. “
처음엔 심드렁했던 엄마가, 주저주저하면서 몸을 비비 꼬는 내 모습을 보고 무언가 단단히 꼬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뭐, 말을 해봐! “
“저기, 집에 오는데 어떤 여자가 봉고차에 막 태워가지고 ….”
나는 횡설수설 방금 벌어진 그 일을 얘기했다. 엄마는 당장 같이 가자고 했다. 어디 훤한 대낮에 사람을 속이냐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보니, 이미 사람들도 봉고차도 흔적도 없었다. 난 그날 반 죽을 만큼 맞았을 것이다. 욕바가지도 화수분으로 얻어먹었을 거다. 돈 60만 원이 누구 집 애 이름이냐며, 넌 나이를 어디로 먹었냐며…. 내 머리가 그때 일을 다 지우고 싶었나 보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게 다행인 것도 같다.
엄마는 얼빠진 나 대신, 다음날부터 사방으로 알아보았다. 며칠 지나자 정말로 물건이 도착했다. 그릇이며 냄비는 말 그대로 싸구려 물건들이었다. 엄마는 물건을 받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새가슴인 나는 그냥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창고 한구석에 물건을 쌓아놓았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물건을 가져가라 했지만, 절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물건을 쓰지만 않으면 반품이 아주 쉬운 세상이지만, 그때는 파는 사람이 ‘왕’이었다. 엄마는 ‘내용증명’이란 걸 우체국에 가서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난 겁먹은 어린양이 되어 열 달 동안 꼬박꼬박 그들이 보내주는 지로용지로 대금을 지불했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가고 창고에 쌓여 있던 그릇들은 내 신혼집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엄마는 내 집에서 그 그릇을 볼 때마다 쉬지도 않고 잔소리를 해댔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니 대꾸도 못 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그 그릇들은 한참이나 나를 따라다녔다. 10년 넘게 미운 정과 미운털이 박혀 있던 접시와 그릇, 냄비들을 새것으로 바꿔버린 날, 막힌 배수구에 ‘뚫어뻥’을 부은 것처럼 속이 개운했다.
그때 그 악덕 업주들은 잘 먹고 잘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