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사 박민근이 들려주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연대 국문과 사태’가 일어나고 2년 정도 지난 뒤였다. 마광수는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의 영혼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정신의 추락은 나 역시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오직 살기 위해서였다.
마광수는 그것을 심하게 반대했다. 내게 서울에 남아 글도 쓰고, 등단도 해보라며 자기 옆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그에게 도와줄 후배들을 소개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녕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나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마광수와 투쟁하던 학생들을 향해 내뱉었던 교수들의 말과 글이 대못처럼 가슴에 박혀 나를 괴롭혔다. 그들이 휘두르는 언어는 살인무기처럼 나를 날카롭게 찔러댔다. 그들은 한때 나의 스승이던 사람들이었다.
국문과 사태의 시발점에 내가 있었다. 2000년 초, 나는 국문과 성원, 20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마광수의 임용탈락을 결정한 교수들을 앉혀놓고 그 결정은 틀렸다는 입장문을 낭독했다. 그 후 내 삶은 헤어나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 교수들에게 나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 적이었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위험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이 까짓 국문과 떠나면 그만이지’ 하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목숨처럼 아꼈던 국문과를 떠나는 일은 내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그 교수들 중 한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차마 그 교수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외면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 교수에게 이런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이 깊어만 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의 정신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정신적 고통을 숨겨야 했다. 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은 것도 있었고, 나 자신을 나약한 놈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미쳤어.’ ‘나는 병약해’ 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픽픽 쓰러졌다. 영화 <아이다호>의 주인공이 가졌던 기면증 같은 것이 찾아왔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길에서 쓰러지곤 했다. 긴장을 할 때는 조금 견뎠지만, 긴장이 풀리는 순간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놓이면, 뇌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망상이나 환각, 혹은 기절 상태 같은 도피 수단을 허락하게 된다. 나는 그것이 극심한 갈등 탓임을 잘 알았다. 숨 쉬는 매순간 애간장이 타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적 갈등을 피하는 데는 술이 특효였다. 매일 술에 의지해 살았다. 밤마다 불면을 술로 겨우 쫓아내고 잠을 청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괴로운 생각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다. 술자리를 전전하거나, 혼자서 술을 마신 날이 많았다. 조그만 TV 위에는 항상 마시다 만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몸이 술로 고통에 저항하는 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는 가파른 계단에서 기절하며 뒤로 나뒹굴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머리가 다행히 벽이나 바닥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온몸이 심하게 멍들었다. 두려워졌다. 내가 무너지고 있는 이 상황이……. 망가지는 나의 자아가 공포를 느끼게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 고통스런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벗어날 구멍이 하나 있었다. 마침 형이 충북 음성에서 보건지소장을 하고 있었다. 내게 남은 그 도피처가 눈물겨울 만큼 감사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서둘러 1톤 트럭을 빌러 짐을 싣고 서둘러 서울을 떠났다.
내가 내려간 곳은 충북 음성의 무극이라는 곳이었다. 높은 목련나무가 마당에 자리 잡은 시골집에 새 거처를 꾸렸다. 형이 기거하는 관사가 좁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내기 위해 얻은 아담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어머니가 세 끼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간신히 기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에 박혀 수업을 빼먹고, 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지난 밤 밤새 마신 술 탓이었다. 정신을 차려 학원 수업을 가는 것도 힘에 부쳤다. 나를 항해 나는 억지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죽은 시체를 대고 인공호흡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 날개는 이미 추락하며 완전히 부서진 채로 아무 가망이 없었다. 그것은 꺾인 날개로 날아오르려 했던 시도였다. 당연히 저 벼랑 끝으로 다시 고통스러운 추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세상이, 인생이 점점 더 두려워졌다.
어느 순간 나의 대인기피증, 광장공포증은 도를 넘어서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 존재가 몹시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자꾸 엄마 뱃속으로 숨고 싶었다.
........
한없이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 박민근, <살아갈 희망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az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