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사 박민근이 들려주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문학을 포기하고 시골집으로 내려온 나는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마광수를 떠나는 일이었다. 나는 15년 가까이 그와 함께였다. 그것은 비참하도록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가치 있으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상처와 치유가, 성장과 퇴행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내 마음에서, 내 삶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나는 치유의 시간을 걸으며, 그가 내 인생에서 멀어질 것을 예감했다. 만남도, 우정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를 갈라놓을 것이기에, 각자의 운명이 다른 길로 뻗어 있기에.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만나게 했지만, 어느 날 서로의 길은 서로 다른 곳으로 뚫려 있었다.
시골집에 내려온 후 나는 내적 치유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걸었다.
그리고 서울로 친구나 마광수를 만나러 가는 일은 중단했다. 나는 고독해지고 싶었다. 견고한 고독 속에서 오직 나 하나만 대면하고 싶었다. 치유를 위해 내게는 단독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영화를 보았다. 내 방에 놓인 작은 TV로 많은 영화를 감상하며 인생을 다시 배워나갔다. 영화도 책 읽는 것만큼 치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영화의 감동을 일기에 옮겼다. 500편은 족히 될 것이다. 반드시 뛰어난 감독의 명화만이 치유의 언어를 건네는 것은 아니었다. <빨간 머리 앤> 같은 애니메이션이, <빠삐용>이나 <스탠 바이 미> 같은 오래된 영화가 그을린 마음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감상한 <니모를 찾아서>나 <월 E> 같은 애니메이션이 둔중한 깨달음을 줄 때도 있었다.
특히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한 대사는 내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잡았다. 힘겨운 삶을 산 제니는 불치병으로 죽어간다. 그녀의 삶은 회복되기 힘든 것이었다. 죽은 제니의 무덤 앞에서 검프는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 운명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바람에 떠도는 건지 모르겠어.
...
내 생각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아.
검프는 혼란한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전국을 쉬지 않고 달린다. 나는 이 장면에 매료되었다. 나도 지난 인연들을 떠나보내며 바람처럼 운명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보기로 했다. 검프처럼 뛰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주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전국의 100개 사찰을 정하고 한 군데씩 찾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매주 처음 가보는 고장에 내려 운명의 바람소리를 들었다.
하늘과 바다, 대지 한가운데 한 점 존재, 인간으로 서 있는 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인간의 본질은 죽어감이다. 언젠가는 우주의 작은 먼지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불완전성, 유한성, 죽음은 나를 오랫동안 두렵게 했던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걷고 또 걸으며 그 단어들에 차츰 편안해질 수 있었다. 불완전하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유한하니,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 있으니, 삶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삶의 진실을 내 안에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걷기가 선사하는 절대 고독 속에서 내게 남은 길을 열렬히 상상했다. 걷고 상상하며 나는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를 다시 세워나갔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에 흥분했다.
그러는 사이 나를 묶고 있던 과거의 사슬들이 하나씩 ‘쨍’ 소리를 내며
끊어져나갔다. 마광수가 묶고 있던 과거는 가장 크고 무거웠던 사슬이었다.
마치 어른이 된 아이가 부모를 떠나듯 나는 마광수를 떠났다.
그의 정신에서 서서히 나를 떨어뜨렸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하지만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서서히 그의 세계에서 떠날 수 있었다.
- 박민근, <살아갈 희망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az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