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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삿헌 Oct 30. 2022

7. 오래된 새로움

공부를 하자 마음먹었고, 학교의 커리큘럼이 맘에 들어서 전형에 맞는 서류들만 준비해 최대한 빨리 떠났기 때문에 그 학교가 맨해튼에 있다는 것은 체제비가 많이 들겠다는 걱정 말고는 아무 염두에 두지 못했다. 아뿔싸! 도착한 곳은 20세기의 도시라는 맨해튼이었다. 음식의 맥락을 잡아보겠다고 왔지만, 이렇게 유명하고 큰 도시에서는 대체 무엇을 보아야 할까 고민되었다. 자칫, 밀집한 데다 독특한 생명체 같이 느껴지는 이 도시를 흐르는 대로만 보다가는  본 것은 많은데 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주의 후배를 통해 알아두었던 세 번째 한국인 뉴요커 찬스를 쓸 때라고 생각했다. 몇 년째 맨해튼의 이민자들의 음식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주제로 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는 그녀가 뉴욕에서 사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보고 다녀야 할지 묻는 나에게 일단 맨해튼 곳곳에 있는 100년이 넘은 가게들을 가보아야 한다며 데리고 간 곳은 게이 문화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있는 찻가게였다.  <Mcnulty’s Tea & Coffee>, 오래된 초록색 칠 입구의 가게였다. 카페 레지오도 초록빛이었는데, 당시 유행한 컬러인가 싶다.



 126년 동안 맨해튼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에서 온 고급차들과 커피를 공급해 온 자부심의 이 가게는 직원이었던 웡 형제가 1980년에 주인에게 매입했다는데, 내부구조는 물론 쓰던 기구들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쓰고 있는 듯했다. 아름다운 도구들은 저절로 앤틱 장식물이 되니 굳이 치울 일도 아니긴 했겠지만, 변함없이 두고 있는 끈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 엄청난 크기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카페가 생겨도 매출이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고, 오히려 고급 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웡 부자의 손님을 대하는 친절하고 익숙한 태도와 느긋하고 편안한 표정이 좋았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런 오랜 가게들이 있고, 그 주인이 고객들의 얼굴과 이름, 애호하는 차의 종류를 기억해주고, 그 손님들의 가족들이 대를 이어 가게의 고객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곳, 사람 사는 냄새에서 느끼는 행복감, 그래서 나도 그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아닐까?


그녀가 커피콩을 사는 동안 감각 레벨의 수용성을 한껏 올려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빽빽한 진열대 사이 좁은 공간을 돌 때마다 가게만큼 오래됐을 금빛 저울, 차를 담는 낡은 틴들과 유리병, 커피 포대, 나무 선반 한쪽에는 한국의 인삼차 박스도 놓여 있어서 아무도 모르게 작은 호들갑도 떨며, 각 대륙에서 엄선해 들여온다는 차들의 이름표들을 천천히 살피며 읽어보다가 대부분이 블랜딩 차라는 것을 깨닫고는 126년의 전통도 시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 어쩔 수 없어서 유행 따라 커피도 팔게 되고 차도 블랜딩이 되어야 했구나 생각했더랬다.

가게의 역사만큼 오래된 차 저울                                                                아버지에 이어 운영을 돕는 아들 웡

맞는 생각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애비뉴와 스트리트 사이의 '블록 블록들에 저마다의 스토리가 다르게 있다.'는 그녀의 조언은 그날 이후 유학 생활의 키가 되어 주었다.

퓨전이라는 것은 과거에서 전해지는 것에 현재가 더해진다는 말이다.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벼운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맨해튼은 그 시간의 레이어드가 다 들여다 보이는 곳이었다.

전통과 정통 옆으로 트렌디가 흐르는 도시랄까?  

 차가 담긴 큰 유리병들이 얹혀 있는 뒤편의 선반을 훑어보다 학교 수업 재료 목록에 보이던 훈제 차 랍상소총이름표를 발견했다. ''이 차를 여기서 보네!" 반가워서 130g을 주문했다. 이왕이면 딥 스모크로! 

추억은 사람과 장소와 물건을 타고 온다고 아직 남아 있는 차 봉지를 보며 생각한다.


 


1. 마블드 에그&템페


     

     


2. 마파 템페

3. 청경채 볶음

4. 양상추 템페 볶음

5. 파이황과 템페

6. 비건 중국 소스 만들기

7.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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