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Woodside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마 800 종쯤 될 거라고 그랬다. 인류학 공부를 하는 사람의 말이니 믿을 만한 말일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내가 선 자리에서 들리는 언어만 매일 6~7가지 넘는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티벳이나 몽골어도 있을 수 있겠고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 아랍인이나 그리스인들도 있을 테니 승객이 많은 날은 훨씬 많은 언어들이 한 공간에서 오가는 날도 있을 것이다. 피부색대로 생김새대로 모여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거나 각기의 언어로 동족들과 통화하는 모습은 정말 글로벌한 광경이어서 이 도시가 정말 재밌게 느껴진다.
어느 주말엔가 우리 288반 애들은 Food tech라는 큰 박람회가 열린다며 유명 셰프들의 행사를 보러 갔지만, 나는 tech 보다는 Ethnic을 선택하기로 했다. 종강하면 인턴쉽을 할 레스토랑을 스스로 구해야 하고, 그것이 졸업 조건이다. 트럼프 정부가 종강 후 한 달까지만 비자를 허용했으니 인턴쉽 끝나고 나면 시간 여유가 없다. 치열하게 살고, 귀국 전 맨해튼 아니 곳에서 휴식이 될만한 여행을 하고 가고 싶었다. 그러니 틈이 나는대로 각 민족들의 정통 음식과 재료들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을 적어 두었다가 틈틈이 가보는 것이다. 물론 시간과 비용을 쪼개 하이엔드 미쉘린 레스토랑 순례도 해야 한다.
우드사이드에서 몇 정거장 더 걸어 들어가면 히스패닉들이 많이 살았다. 각기 자기 나라에서 들여온 재료로 빵을 만들어 파는 작은 빵집들이 있었는데, 콜롬비안 빵집에서 만드는 빵들이 참 싸고 맛있었다. 재료들은 자기 나라에서 갖다 쓴다고 한다. 남미의 치즈는 유럽의 치즈와 다른 고소함이 있는 데다 밀이나 옥수수가루도 그렇다니 맛이 달랐다. 그 지역의 그런 가게들은 입구에 '온리 캐시!' 현금만 받는다고 당당하게 붙여 놓는다. ATM 서비스 비용도 아끼느라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유학생은 돈이 없어서 엠빠나다 두 개만 사 먹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하하.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더 깊이 (맨해튼에서 먼 방향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멕시코인가 싶은 구역이 나온다.
식료품점 안에는 그들이 먹는 고추가 종류별로 가득했다. 한국사람들이 매운 것을 좋아해서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멕시칸들이 먹는 고추는 매운맛의 분류가 있을 정도로 훨씬 다양하다. 그런 재료들로 만든 정통 타코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었다. 노점도 아닌 매거나 끌고 다니는 타코 통에 담긴 타코.
본토인들이 만든 정통의 맛을 본다는 것은 성지순례 같은 일이라 골목과 길가를 기웃기웃, 구글 지도에 평점 표시도 없는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레스토랑들 중에 느낌으로 선택해 들어 가보고, 온통 멕시칸 식료품인 대형마트의 칸칸을 다 돌아보며 사진으로만 알던 재료들을 만져보고 냄새 맡고 사진 찍고 반나절의 멕시코 여행을 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라고 생각했었고 실제 거의 모든 장소를 두 번씩 가보진 못했다.
멕시칸 거리의 타코 노점
고춧가루는 우리나라에서 양념이라 불린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부재료인 양념이나 향신료가 다르면 무척 다른 요리로 느껴지는 것은 향기가 사람에게 주는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말일 것이다. 인도 사람들 구역 식료품점에서 만난 향신료들도 무척 재미있었다. 시나몬 가루가 생산지별로 다르고, 건조된 꽃들과 과일의 가루라던지, 김치 양념이 스파이스로 나오는 것은 뉴욕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즐거운 일이었다.
재료 고민을 늘 하게 되는 셰프들이 가서 물어보면 음식재료에 알맞은 허브와 스파이스들을 추천해주고 적당한 조리법도 알려주는 가게가 있다고 해서 갔었다. SOS Chef. 이름마저도 컬트무비 같은 이곳에 세계의 모든 향신료와 발효 식품들이 다 모여 있었다! 전 세계에서 질 좋은 제품들만 직접 들여온다고 했는데, 가격은 무척 비쌌지만 직접 식초를 빚고 재료를 발굴하는 주인의 장인정신에 감동했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장사하는 사람이기보다 같이 연구하는 입장이었다. 세계의 스타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 있는 도시의 전문 샵 답게 각 대륙의 재료들이 다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있다면 정말 모든 게 있는 가게 일거라 생각하고 찾아본 산초가루가 아쉽게도 Japanese sancho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만 진열되어 있었다!
직접 빚는 식초들- 각각의 요리에 어울리는 맛을 추천해주고 덜어서 팔아 준다.
양념은 맛을 돕기 위해서 쓰는 재료의 총칭이다. 서양요리에서는 허브와 스파이스로 나눈다. 허브는 주로 약 성분이 있고 향기가 있는 식물의 잎을 말하고 생으로 쓸 때도 있고 건조된 것을 쓸 때도 있다. 스파이스는 허브보다 더 강렬한 맛을 내는 뿌리나 줄기 씨앗 열매를 말린 것들을 말한다.
학교 실습실 한쪽 벽에 진열되어 있는 허브와 스파이스 통들의 개수가 60가지가 넘었다. 처음엔 그 벽을 바라보며 저 재료들의 특징들을 언제 다 깨치나 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 공부를 하러 온 목적인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의 맥락을 잡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동양의 음식과 비교할 때 서양의 음식은 큰 테두리 안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나라 별로 쓰는 부재료인 허브와 스파이스의 종류로 맛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