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려 주는 디톡스+ 부스터 음식
몇 년 전 뉴욕에 식사하는 동안 묵언을 해야 하는 규칙 있는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뉴스를 보며 도대체 뉴욕은 어떤 도시이기에 그런 레스토랑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실제 이렇게 하루 종일 엠뷸런스 소리가 그치지 않고, 맨해튼의 흘러가는 하숫물을 마시면 영양제는 안 사 먹어도 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약국이 많은 도시라면 밥이라도 그렇게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영업 중이라면 가보려고 했지만 문을 닫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인도의 음식 철학이자 대체의학인 아유르베다는 소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라는 물음에,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뇌에서 음식을 인지하면서부터 소화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외부의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음식이 가진 색을 의심하고 맛을 의심하고 양념을 의심하고 부엌을 의심하여 끝내 만든 사람을 의심한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배를 불리기 위해 먹는다면 그 음식이 내게 무엇이 될까?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감각을 멈추고 대상을 향한다는 뜻이다. 잠시의 침묵을 식사의 첫 단계라고 말하는 아유르베다의 지혜 속에서 자신에 대해 베푸는 사랑, 배려의 가르침을 얻게 된다. 제대로 보라는 말은 자신을 살리는 음식을 귀하게 여기라는 뜻일테니까.
밥상 앞에서 말하지 말라는 것도, 식탁에서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라는 것도, 결국 다 좋은 식사로 몸에 양식이 되게 하라는 뜻일 게다.
명상 이야기를 하니, 항상 평화와 깨어 있음에 대해 말하던 순수한 동료 다니엘이 생각난다. 다니엘은 템페 배우는 일도 같이 했는데, 가족은 콜럼비아 이민계였다. 유학 생활 내내 노트를 공유해 주었던 독일 출신의 샬롯, 팔로마는 어릴 때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영어 한마디 못하고 학교에 다닌 적이 있어서 나의 힘듬을 안다며 '코삿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며 언니처럼 귀엽고 다정하게 굴었었다. 다들 내 딸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는데 나를 자기 친구로 알았다. 동양인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해서. 샬롯은 대학 친구들 중에 한국교포들이 있고 한국도 다녀간 적이 있어서 나에게 호감을 가졌고, 실습실에서도 나와 늘 한 팀으로 움직였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자기 집으로 초대했던 CJ. 가끔 불러내 휴일 친구가 돼 주었던 한국인 친구들. 다정한 사람들 덕에 힘든 유학생활 중에도 늘 작은 행복이 이어졌고 힐링이 돼주었다.
자연주의 요리학교답게 18명 우리 반 학생들 중에 비건이 7명쯤이었고 CJ처럼 자기의 식생활을 챙기기 위한 음식을 배우기 위해 요리학교에 들어온 학생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음식을 앞에 두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침 한번 삼키는 시간 정도의 멈춤을 한다.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다정한 것들을 바라보는 얼굴은 웃고 있을 것이다.
음식은 기쁘게 만들고 감사히 먹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