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기 참 어려운 질환
그 단어를 다시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췄다.
자가면역질환.
낯설지는 않았다.
간호사 공부를 하면서 또 일하면서 여러 번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들은 그 단어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동안 책에서 보고 병원에서 보던 자가면역질환은
환자의 차트 위에 적혀 있는 진단명이었다.
건선, 아토피, 두드러기, 류마티스, 루푸스, 크론병, 강직성 척추염 등등
이름들은 알고 있었고,
대충 어떤 약을 쓰는지도 알고 있었고,
환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끼어 들어오는 순간,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가면역질환.
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면역 체계가, 어느 순간 자기 몸의 일부를 낯선 것으로 오해하기 시작하는 상태.
그 설명은 간단했지만 나는 그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몸이 자기 몸을 낯선것으로 오해해서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걸까.
몸은 원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면역은 우리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인데
왜 그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생겨
오히려 스스로 몸을 괴롭히게 되는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면역에 관한 책을 읽고,
장 건강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피부 질환과 자가면역의 관계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면역이 갑자기 미쳐서
자기 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은 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균형이 오랫동안 흔들리면
면역은 점점 예민해지고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몸은 갑자기 망가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작은 불균형이 쌓이면서
천천히 방향을 잃는다.
나는 그 사실이
생각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기 때문이다.
몸은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조금씩 몸을 그 방향으로 밀어왔을 수도 있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질병을 ‘고쳐야 할 문제’로 봤다면
이제는
‘몸이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건선도 마찬가지였다.
피부 위에 올라온 증상은
내가 살기 위해 몸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나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 신호가 생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몸을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보기 시작했다.
피부는 피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장은 장만의 문제가 아니고,
면역은 면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몸은 생각보다 훨씬
정직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연결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몸 안에서는
한쪽 부분이 깨끗해지면
나머지 부분도 같이 깨끗해질 수 있는가?
자가면역 질환도 "완치"라는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