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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11. 2019

#_책을 읽어도 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

책 읽는 방법이 아니라, 책을 대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책을 정말 잘 읽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많은 책 속에서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 모두는 그들이 책을 잘 읽게 된 이후에 하고 있는 독서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특정한 독서법을 해서 책을 잘 읽게 된 게 아니라, 책을 잘 읽게 되어서 독서법이 제대로 정립되었다는 말이다.

책을 잘 못 읽던 시절 가장 부러운 능력은 단연 속독이었다. 어떻게든 나도 빨리 읽고 싶어서 속독을 알려준다는 강의도 여러 개 들었다. 관련 책도 읽었다. 그런데 잘 안되더라. 그때부터 나는 방법론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읽는 방법이 뛰어나서 책을 잘 읽는 게 아니다. 책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잘 읽는 것이다. 책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책 읽는 방법을 스스로 발견해 내는 것이다. 즉, 책을 대하는 방식이 본질이라면, 책을 읽는 방법은 현상인 셈이다.

책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전에 출간한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에 잘 정리해두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서는 연애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연애하는 방법을 잘 알았기 때문에 연애를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성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연애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일까?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방법은 저절로 찾을 수 있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할 줄 모르면서 아무리 연애 방법에 능통해 봐야 그게 진정한 관계가 될지 미지수다. 정말이지 사랑하면 보인다. 

나는 책이 참 좋다. 가끔 책에 빠져 있노라면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귀찮을 정도다. 좋은 책이 너무 많다. 전부 만나고 싶은 데 시간이 부족하다. 매일 틈틈이 책을 펼쳐 본다. 어쩜 그리 멋진 문장들은 많은지... 온통 책에 밑줄을 치고 책 모퉁이를 접어놓는다. 어느새 책 모서리만 뚱뚱해진 책 한 권이 태어난다. 좋은 사람 곁에는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있듯이 좋은 책 곁에는 그 책이 있게 도와준 더 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그 책들을 거슬러 찾아보고 발견하고 읽고 감탄한다. 이런 독서의 기쁨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여러 가지 행복 중에 상당히 큰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탐독하는 모습을 볼 때 아무래도 연애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애석하게도 아내는 질투조차 안 한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독서는 연애다’는 다른 말로 ‘독서는 가슴 설레는 만남이다’라고 적어도 무방하다. 설레는 만남을 한번 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첫사랑을 그렇게 못 잊는다. 태어나 처음으로 설레는 만남을 경험한 사람이라 그렇다. 난생처음 설레는 책과 만나보길 바란다. 잊지 못할 독서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이런 의문을 가지는 분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해봤는데, 여전히 책을 잘 못 읽는 것 같아요.’라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원래 첫사랑은 그래서 다 실패하지 않나. 주변에 첫사랑과 결혼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세어보면 금방 이해될 거다. 한 번의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자꾸 만나봐야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하루에도 여러 책과 썸 타는 경우도 있다. 사람도 책도 자꾸 만나봐야 상대를 대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다만 책은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자신은 없다.


자주 만나려면 내 취향을 알아야 한다. 취향이란 나만의 기준이고, 그걸 알면 만남이 쉬워진다. 문제는 나만의 기준을 모른다는 점이다. 좋은 독서경험을 하고도 아직 책과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본 사람은 어린 시절 떨리는 첫사랑은 경험은 있으나 성인이 되어서 진짜 연애는 못해본 것과 비슷하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이 느끼는 감정은 첫사랑의 아련함이지, 뜨거운 연애감정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은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은 있었으니 진짜 연애는 못해본 것이다. 


원래 책은 정말 설레고 재미있는 것으로 가득한데, 학교 다니면서, 시험공부하면서, 입시를 거쳐오면서 지독하게도 재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앞서 말한 책을 대하는 방식을 잘못 배운 거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사람과 연애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에 그 사람의 스펙, 이력, 외모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 평가를 외우는 것과 비슷하다. 설레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의 내러티브(이야기)가 궁금할 리가 없고, 궁금하지 않으니 재미도 없고, 그래도 해야 하니 억지로 읽는 훈련을 한 거다. 결코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저 산업화로 인해 세상이 급속히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고급인력이 필요했고, 그런 고급인력을 더 많이 배출해 내기 위한 방식의 교육이었으니 개인의 즐거움이 낄 자리는 별로 없을 수밖에.


결과적으로 이런 시절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소신 있게 자신의 취향을 지켜온 이들은 각자 자신의 색깔대로 살고 있을 테지만. 대부분의 착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일수록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만다. 슬픈 일이지만 괜찮다. 다시 찾으면 된다. 독서는 자신 본연의 색깔을 찾게 만들어주는 지식 샤워니까.


여러 이유로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기성 교육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독서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게 된다. 연애 이야기하다가 스토리가 조금 방대해진 느낌이다. 정리하겠다.


책을 온전히 읽으려면 먼저 나부터 알아야 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독서고, 독서를 통해 더 큰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겠지만, 심플하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딱 그 시간만큼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게’ 나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에 따라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달라지고 싶다면 그것만 바꾸면 되는 문제다. 그것부터 알고 시작하자는 거다.

독서는 내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물론 지식을 얻는 다른 좋은 방법들도 많지만, 독서만큼 능동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들이 더 빠르고 간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반면 독서는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만날 수 있다. 강의 많이 들어서, 학위를 많이 따서, 멘토를 많이 만나서 “진짜 나”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좋은 강의, 학위, 멘터가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만남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결국 진정한 자신의 탁월함을 발견한 사람의 대부분은 독서를 통해서였다.


오늘 재미있는 책 한 권(혹은 한 줄) 읽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책을 시작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식’을 터득하는 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놀라운 발견이다. 다양한 책을 자꾸 만나보자. 다 안 읽어도 괜찮고,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다. 책에서 자유로워져야 진정한 책을 만날 수 있는 법이다. 재미는 자유로운 때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다 적은 이야기인데, 중복해서 이야기한 건 아닌가 싶다. 평어체로 적어서 인지 적어도 뉘앙스는 좀 다른 것 같다. 책을 읽는 멋진 방법들이 참 많고, 소개하고 싶은 좋은 책이 정말 많다. 다만 그전에 책이 원래 재미있었던 그 세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 설레는 ‘세상’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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