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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y 28. 2023

#_서툰 글을 쓰지 않고 나아갈 방법은 없다

문이졸진 도이졸성(文以拙進 道以拙成)

잘 쓰려고 하기보다 꾸준히 많이 쓰면 글이 좋아진다는 선배 작가님들의 조언을 실천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하루는 그 차이를 체감하기 힘들지만, 몇 주 몇 달의 시간을 통해 조금은 성장한 흔적이 느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채근담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문이졸진(文以拙進)하며 도이졸성(道以拙成)하나니 일졸 자(一拙字)에 유무한의미(有無限意味)라.

『채근담』 후집 94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문장은 서툰 데서 나아감이 있고 도는 순박함으로써 이루나니, 이 졸(拙) 자가 무한한 뜻을 담고 있다."라고 풀이됩니다. 글은 서툼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어쩜 이토록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글뿐 아니라, 일도 사랑도, 우리가 새롭게 배우고 익히게 되는 모든 것이 처음에는 서툴 수밖에 없고, 그 서툼에 안주하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일 겁니다.

서툰 시작이 없다면, 나아감(進)도 없고, 도의 이룸(成)도 없는 것이죠. 왜 이토록 단순한 진리를 오랫동안 외면하면서 살아갔던 걸까요? 왜 때론 알면서도 또 서툰 시작을 주저하는 것일까요?


돌아보면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욕심.

성장하는 과정의 기쁨보다는 일단 결과부터 얻고 싶은 조급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채근담의 구절은 그런 나에게 자상하게 또 한 번 조언해 줍니다.

글은 서툼으로 나아가고, 도는 서툼으로 완성된다고 말이죠. 오늘 쓰는 글이 비록 모자랄지라도 내 성장의 밥이 되고 약이 됨을 느낍니다.


서툼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졸 자(一拙字)에 유무한의미(有無限意味)라.”

앞서 인용한 문장을 다시 보면 이 졸(拙) 자 한 자에 무한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졸 자를 파자해 보면 ‘拙 = 手 + 出’로 出 자는 초목의 싹이 차츰 위로 뻗으며 삐죽삐죽 자라는 모양을 상형한 문자입니다.  졸(拙)은 손재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고 멋대로 비어져 나온다는 뜻에서 ‘서투르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졸은 서툴고 옹졸하다는 뜻으로 ‘졸렬(拙劣)’이나 ‘졸장부(拙丈夫)’ 같은 단어에도 쓰이지만 자기 또는 자기 사물의 겸칭(謙稱)으로도 쓰입니다. ㅡ졸고(拙稿), 졸작(拙作), 졸필(拙筆), 졸처(拙妻) 등


오랜 시간 제 자신이 겉멋에 취해 살아왔다는 반성이 듭니다. 글 역시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내가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담담히 쓰면 되는 것인데, 나를 뽐내려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어설픈 꾸밈은 그 본연의 힘을 잃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가 힘차게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면, 그건 자신과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꾸밈없는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노래에도 감정과 진심이 실려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듯이 글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느꼈습니다. 많이 써보지 않았으니 서툴겠지만, 그 속에 진심이 있고,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 작가의 인생이 담겨있다면 그 글은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拙"졸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서 전진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어서 서툰 유튜브를 시작해야겠습니다. ㅎㅎ)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말한 미약한 시작이 채근담에서 말하는 서툰 시작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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