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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18. 2019

나의 첫 연애에서 얻은 교훈

1996년 8월 어느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개팅을 했습니다.


1996년 8월,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부산의 한 남고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하루는 근처 여고를 다니던 친구가 저에게 소개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주었죠. 

저는 무척 설렜어요. 그 전까지 누군가를 짝사랑해본 적은 많았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교재를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고 3이라는 ‘신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소개팅을 하기로 했지요.


일주일쯤 뒤에 친구의 주선하에 처음으로 소개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소개팅으로 만난 친구가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만나지 못할 정도로 싫은 것도 아니었죠. 

중요한 것은 저는 그 당시 정말 순진하게도 소개팅을 하면 당연히 사귀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특히 첫 연애이기도 했기 때문에 상대가 누군지도 중요했지만, 스스로 연애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해서 참 열심히 남자친구 역할을 수행했죠.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밤마다 전화도 하고, 삐삐로 음성메시지도 남겼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설레는 느낌은 많이 없었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처음 소개팅을 주선했던 친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가 다짜고짜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야, 니 주희가 그렇게 좋나?”

“어…… 사실은 안 그래도 나도 한번 말할라고 했는데, 내가 소개팅을 해서 일단 만나고는 있는데,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사귀는 거니까 잘해주고는 있는데 잘 모르겠네.”

“야! 니 바보가? 안 좋은데 가를 와 만나고 있노?”

“소개팅해서 만나면 사귀는 거 아이가?”

“아이다. 니 진짜 몰랐나?”

“어 나는 몰랐지.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데?”

“주희가 학교에서 하도 남자 하나가 자기를 쫓아다닌다고 소문을 내고 다녀서 니한테 한번 물어볼라고 전화한 거지.”

“맞나? 나는 좀 별론데, 막상 그렇게 얘기 들으니까 별로 기분은 안 좋네? 내가 연락해서 잘 얘기해야겠네.”

“으이그, 니 진짜 바보 아이가? 마음에도 안 드는데 소개팅했다고 사귀는 아가 어디있노?”

“일단 알겠다. 끊어봐”

“그래 알겠다.”


친구와의 통화가 끝나고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개팅녀에게 삐삐로 음성메시지를 세 통을 남긴 건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음성메시지가 1분을 넘으면 ‘뚜뚜뚜뚜’ 하는 신호음이 나왔고, 그때 별표를 두 번 누르면 30초를 추가 녹음할 수 있었는데, 그 음성을 세 통을 남겼으니 거의 4분 가까이 혼자 장문의 음성메시지를 남긴 셈이지요. 그렇게 제 짧았던 첫 연애는 쓸쓸한 실패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독서와 소개팅의 상관관계


갑자기 이 옛날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이미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인가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때 불현듯 제 첫 연애가 떠올랐어요. 저는 오랫동안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억지로 의무감에 읽고 있었거든요.

마치 소개팅을 하면 무조건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열아홉 살 철부지처럼 20대, 30대에도 좋아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책임감 때문에 보고 있었던 거죠.

그날의 깨달음 후로는 즐겁지 않은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연애가 재미있고 즐거운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하고만 만나기 때문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에요. 다시 만나고 싶은 책을 만나서 그 책과 눈맞는 경험을 하고 나면 책에 빠져듭니다.

진짜 재미있고요. 놀랍습니다. 남들은 재미없어 할 것 같은 책을 내가 이렇게 재미있게 봐도 되나 싶죠.

그런 책을 얼른 만나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런 책이 어디있냐구요? 서점에 있고, 도서관에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사놓았던 내 책장에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 본문에 나온 여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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