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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n 12. 2023

#_글쓰기를 위한 최고의 추천도서

살아있는 책, 살아있는 글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이도 동네 구석구석 걸어 다니기도 하고, 특히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는 가급적 여유 있게 출발해서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약속장소로 가는 편입니다. 우연히 상대방이 늦게 나온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저는 이미 그곳을 즐겁게 여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여유가 좀 더 많으면 뷰가 좋은 카페에 들어가 혼자 여유 있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기도 합니다.


아니 글쓰기를 위한 최고의 추천도서를 알려준다더니 왜 엉뚱하게 제가 산책하는 이야기를 하냐고요?

그건 제가 추천하는 최고의 책이 바로 "산책"이기 때문입니다.


산책(散策)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 뜻이 散(흩을 산) 策(꾀 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산(散)은 산만하다고 말할 때의 '산'이고, 책은 책략이나 계책을 짠다고 말할 때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해석해 보면 산책은 기존의 생각이나 계획 등을 흐트러트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곱씹어볼수록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니체는 알프스 산맥을 2시간가량 산책하는 짧은 여행을 즐겼고, 많은 시간을 걸으면서 사색하는 철학자였는데요. 그는 <우상의 황혼>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걸으면서 얻은 생각만이 가치 있다.


종종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는 문장으로 번역되거나 니체 명언으로 알려져 있는 문장이기도 하죠. 산책의 중요성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글임은 분명합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12시 30분에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30분에는 어김없이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변함없이 말이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칸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칸트는 왜 그토록 산책에 집착했을까요?


로제 폴 드루아는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이라는 책에서 "철학적 사유는 하나의 걷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그 결이 비슷합니다. 목적 없이 나왔지만, 나도 모르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새로운 발견은 나를 새로운 생각과 감정으로 이끕니다. 이제 조금 전 방에 있던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공기와 생각을 가진 나만 남습니다. 산책(散策)의 뜻과 부합합니다.


글쓰기는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체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의 끝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닙니다. 마치 등산을 할 때 올라가는 길은 숨차고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벅찬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지난 몇 시간의 고통쯤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내려가서 막걸리에 파전 먹을 일만 생각..)


글쓰기가 내 존재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가장 좋은 글쓰기는 그 경계를 넓히는 작업일 것입니다. 내 경계가 확장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그동안 고여있던 내면의 생각들을 흩트리고,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산책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혹시 눈치채신 분 있으실까요?

바로 책을 구입해 내 책장에 꽂아놓은 "산 책"입니다. 물론 도서관에서 읽거나 빌린 책도 좋지만, 제 경험상 빌린 책은 나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 없습니다. 그저 스쳐가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산 책은 다릅니다. 당장 다 읽지 않더라고, 읽기 위해 한동안 책장에 꽂혀있더라도 어느 순간 그 책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됩니다. 물론 요즘은 전자책도 무척 잘되어 있고, 검색만 하면 책에 대한 정보나 자료들이 줄줄 나오니까 꼭 책을 구입해야 하나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산 책은 다릅니다. 나의 제2의 뇌가 되어줍니다. 대용량 외장하드 같은 거죠. 좋은 생각이 탄생할 때 '즉시성'이 무척 중요합니다.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생각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때 바로 이어서 떠오르는 책을 펼쳐서 찾아보면 그 생각은 완전한 하나의 문장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매일 글을 쓰며 다시금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의 소중한 책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물론 전자책으로도 읽고, 도서관에서도 빌리지만,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은 반드시 구입해서 책장에 공간을 내어줍니다. 비록 아주 작은 면적일지라도 내 공간의 일부를 내어주는 행위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놓았을 때만 가능한 독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 필요에 따라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위치가 자주 바뀌는 편인데, 물리적인 폴더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최근에 단식을 하면서 밀리의 서재 책장에서 단식과 건강에 대한 책장을 새로 만들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관련 책들을 다시 모아서 함께 보관합니다. 그 공간에는 그 책들과 함께 떠올렸던 생각과 며칠간 느낀 생생한 체험들이 고스란히 저장되는 셈입니다. 물론 100%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물성은 생각보다 힘이 셉니다. 이 짧은 글을 적으면서도 책장을 둘러보고 필요한 책을 꺼내서 찾아보고, 그렇게 발견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 모서리를 접어놓는 물리적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 책"의 힘은 센 것 같습니다.


"산책만이 산(living) 책이다."

오늘 글을 이 한 줄로 정리해 볼까 합니다.

걷는 산책이든, 구입한 책이든 결국 산책만이 살아있는 책입니다. 살아있는 책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길을 걸으며 얻는 생각의 기쁨과 내 책장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걷는 '산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행동"을 돈 주고 '산 책'은 더 큰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독서"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글쓰기의 최고 파트너는 새로운 경험과 더 많은 독서일테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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