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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08. 2019

#_글쓰기의 4단계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우리가 무언가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보다 : 사람은 매일 무언가를 봅니다. 의식하며 보는 것도 있지만 의식하지 못한 채 보고 있는 것은 더 많습니다. 그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는 단계에서 읽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무언가를 읽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봐도 늘 다른 것을 읽기 때문이죠. 그렇게 내 눈에만 보이는 하나의 글감이 떠오르면 저는 하나의 "맥락"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보던 일상도 어떤 "맥락"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다른 생각이 일어나고 다른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새로운 생각의 장면들을 펼쳐줍니다. 

우리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본다는 것은 오감을 통해 전해 들어오는 감각들을 느끼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단 시각적인 것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나라는 주체를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읽다 : 글을 쓰려면 우선 무언가 읽어야 합니다. 읽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죠.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상도 읽을 수 있고, 누군가의 마음도 읽을 수 있고, 내 마음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사물의 마음도 읽어내는 사람들이죠. 잘 읽는 것이 잘 쓰는 것의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나를 주체로 이루어지는 인식과정이지요.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정보를 이해한다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 무언가 쥐어짜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글은 한 번은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 번 쓰긴 어렵지 않을까요? 이런 글쓰기는 행주형 글쓰기가 아닐까 싶어요. 힘주어 짜낼수록 점점 쓸 수 있는 것이 줄어드니까요. 펌프형 글쓰기도 있어요. 잠깐의 독서로도 나라는 우물 안에 마중물을 부어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글을 읽어야만 새로운 글을 펌프질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꾸준히 읽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우물을 조용히 채워놓는 우물형 글쓰기가 아닐까 싶네요. 평소에 다양한 책을 읽고 삶의 경험들을 축적하면서 나라는 우물에 물이 넘쳐서 나온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 글은 딱 읽어 보면 알죠. 작가의 삶의 깊이와 내공이 느껴지는 글은 대체로 다양한 "읽기"에서 비롯되지요.


3. 섞다 : 무언가를 읽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 생각과 섞이게 됩니다. 상호작용이 일어나죠. 외부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나에게 인식되면서 벌어지는 일은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섞이게 되는 경험입니다. 무언가를 알기 전의 나도 돌아갈 수 없고, 그 생각으로 인해 새로운 생각이 파생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낯선 생각과의 조우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가 재미없는 이유는 단순히 읽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보고 읽고 섞는” 과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하나의 시선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방정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좋든 싫든 보고 읽은 것이 내가 생각과 섞이게 되면 어떤 내적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것을 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4. 쓰다 : 보고 읽고 섞인 뒤에야 비로소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쓴다는 것은 그저 남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의 글, 타인의 생각, 타인의 삶 그대로 공유하고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단순한 정보의 이동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렇습니다. 내가 전달한 것을 누군가는 읽고 자신의 생각과 섞어서 의미 있는 내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쓴다는 행위는 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은 나는 타인도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쓰는 만큼 나를 알게 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떤 마음인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적어도 그 순간의 내가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로 옮겨진 것은 성장의 재료가 됩니다. 내가 쓴 글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객체가 됩니다. 내 글을 읽고 섞이는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되는 거죠.

마치 암벽등반을 할 때 중간에 한발 한발 올라가기 위해 못을 박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쓴 글을 밟고 그다음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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