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바게트 케이
워킹맘은 수영/사이클/마라톤 세 종목을 함께 뛰는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것처럼 산다. 온몸을 던져 물살을 가르고, 질주하고, 다시 내달리는 숨 가쁜 나날들. 그리고 미처 뭉친 근육들이 풀리기도 전 다음 날이 시작되는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가정도, 일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란 존재도 아직 내려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좀 더 멀리 내다보는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지난한 레이스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세바스찬은 "어떤 사람들의 열정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어"라고 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 ‘나만의 것’을 잘 만들어낸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 가수 겸 작곡가 정재형 씨의 유튜브를 보면서 어렴풋이 이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본인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뒤, 그 경험들이 잘 어우러져 만들어진 사람. 그리고 그것들이 그 사람만의 유일무이한 취향과 아우라를 만들어 냈다.
삶으로 체득한 말랑말랑한 취향서부터 단단한 원칙과 스스의 신념들을 만들어내는데, 그렇기에 타인에 의해 섣불리 가치 매겨질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함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찾은 답은 그랬다.
인생까지는 몰라도 빵에 대해서 만큼은 스스로 확고한 취향(입맛)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바게트 케이'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이커리다. 유명 프랜차이즈나, 성공한 개인 베이커리 대비 다소 정직한 분위기로 그 깊이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독보적인 곳이라서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한 달에 한번 카카오톡 선예약으로만 바게트를 구입할 수 있었던 곳이다. 당시 나도 몇 번 시도해 보다가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이제는 대기 없이 살 수 있다.)
시그니처인 바게트는 말이 필요 없고, 바게트 샌드위치 종류도 재료가 내는 맛을 조화롭게 담아낸다. 트렌디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제대로, 고퀄리티로 승부하겠다는 신념이 느껴지는 맛이다. 크루아상/뺑오쇼콜라도 바삭하면서 촉촉하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버터향이 풍미의 밸런스가 좋아 먹고 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그러나 다짐만으로 나만의 것을 쌓아가는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미세한 와이파이도 감지해 내고 연결하는 스마트폰처럼, 하루 수많은 이벤트들 속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시그널을 감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오가는 대화들 속에서, 출근길 잠깐 읽은 책 속의 몇 줄로부터, 퇴근길 무심코 본 인스타그램의 피드에서 등등.
그러나 그것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을 때는, 회사 카페 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바게트 케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 이내 무뎌졌던 마음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오늘도
좋은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