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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Dec 01. 2023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 카다멈 번

서래마을 레망도레


복직 첫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빵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참 많이도 먹었다. 마음이 거칠어질 때면 종종 베이커리에 앉아 출근길 혹은 점심시간을 보냈다. 초반에는 늘 익숙한 바게트나 크루아상을 골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빵들로 선택을 넓혀갔다. 역시 뭐든 반복하면 편안해지는 법인가 보다.


올초 복직과 함께 회사생활 10년을 꽉 채웠다. 회사에서 상도 받고 동료들로부터 축하도 많이 받았다. 이제 10년 정도 다녔으니 익숙해지고 편해질까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워킹맘으로의 1년은 오히려 모든 게 리셋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다니는 회사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게다가 밥 먹듯 하던 야근은 육아를 하면서 하니 차원이 다른 부담감과 가족에 대한 마음의 짐이었다. 매일이 불안하고 초조했으며 몸도 많이 지쳤다.


새롭게 세팅된 환경에 나를 맞춰 넣어야 할 때 겪는 어려움. 바로 10년 전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했다.



레망도레

Les Main Doree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서래마을 공원에 신상 베이커리가 오픈했다. 레망도레는 진주 워터베이커리가 서울로 올라와 리셋한 곳이다.  


버터가 충분히 들어가 촉촉한 크루아상, 부드럽고 진한 헤이즐넛 크림을 담은 뺑오쇼콜라, 밀도가 낮고 포슬포슬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마들렌(그중에서도 얼그레이 마들렌을 추천), 맵고 쌉쌀한 카다멈 번까지. 이번 겨울을 즐겁게 해 줄 디저트들로 가득하다. 역시 경력은 어딜 가지 않는다.


게다가 낮에는 채광이 좋아 포근하고, 또  밤에는 매장 안 조명들이 분위기 있게 맞아준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더해져 연말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시 빵 이야기로 돌아와서, 레망도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새로운 메뉴가 바로 카다멈 번이다. 카다멈은 남인도에서 나는 향신료인데 한국에서 흔히 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계피와 비슷하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 몸을 데워주기도 한다. 그래서 유난히 추운 아침이면 갓 나온 카다멈 번을 출근길에 사들고 사무실로 간다. 무겁지 않게 꾸덕한 기분 좋은 식감에 쌉쌀하지만 달큰한 겨울의 향이 하루를 든든하고 또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흔들릴지언정,

넘어지지 않는다


10년을 했어도 워킹맘으로는 처음이니 다시 한번 신입으로 돌아간 셈이다. 워킹맘으로 첫 해를 돌아보니 늦은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눈물을 쏟은 날도 있고, 보고가 기대했던 것보다 잘 끝나서 후련했던 날도 있고, 긴 회의 중간에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키즈노트 속  아기 사진에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든 날도 있었다. 여전히 회사나 가정 그 어느 곳이서도 원하는 만큼 마음을 쏟지 못한다는 게 속상하다.


그러나 “또다시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라는 어느 노래 가사가 있듯이 가본 길은 헤매더라도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남은 하루를 용기 있게 살아내 본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일테니.


오늘도 좋은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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