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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gge Ko Jan 11. 2023

Prologue | 오늘의 빵

해방촌 오파토


나만의

정원으로


복직을 한 달여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같은 직무로 돌아가는 거긴 했지만 워낙 야근도 많고 업무 강도도 센 곳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육아까지 더해졌으니 돌아간다는 게 막막했고 밤이 오면 잠도 오질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던 중, 어느 인도 시인의 문장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어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린다

현인은 정원으로 간다

- 타고르


내게 정원이란, 피톤치드 대신 갓 구운 빵 냄새와 큰 통창으로 간접 햇살이 쏟아지는 그런 곳. 공간 가득 퍼져있는 기분 좋은 향과 따스한 온기로 채워진 ‘빵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종종 산책하듯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거나,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 그리고 복직 이후를 걱정하는 것’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내 앞에 놓인 '오늘의 빵'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며 ‘오늘의 생각’들로 채워볼 생각이다.


마침 몸 이곳저곳이 아파 정형외과, 안과, 내과를 차례로 다녀온 아침. 병원 투어를 마치니 점심시간쯤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정원으로 향했다.





해방촌 오파토

O'pato



붉은 오렌지 차양 아래 오늘의 안식처. 오파토는 이미 여러 번 와봤지만 늘 기분 좋은 식사 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믿고 가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이 지친 이런 날에는 새로운 음식보다 역시나 익숙한 맛이 좋다.


첫 시작은  <오늘의 수프>인 강낭콩 수프. 개인적으로는 콩 특유의 풋내를 좋아하지 않지만 오파토의 강낭콩 수프에서는 전혀 풋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넣은 베이컨의 스모키 한 돼지고기향과 크림의 진한 맛이 푹 익힌 강낭콩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조화로웠다.



메인 메뉴는 ‘프렌치토스트’.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메뉴다. 그도 그럴 것이 완성된 토스트 위에 시럽이 뿌려져 나오는 일반적인 식당과는 달리, 오파토의 프렌치토스트는 조리과정에서부터 식빵에 시럽을 발라 낮은 온도에서 진득하게 구워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겉은 바삭하면서 토스트 시트 내부까지 풍부한 단맛을 갖고 있다. 거기에 곁들여 베이컨과 표면이 설탕으로 얇게 코팅된 바나나를 함께 먹으면 미미(美味)를 외치게 된다.  



한 가지 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렌치토스트에 어울리는 커피가 없다는 점이다. 오파토는 Nespresso 머신으로 내려주는 커피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커피를 위해 또 다른 안식처로 향하기로 했다.




타이거 에스프레소

Tiger esperesso


위치는 해방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오랜 시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경리단길 버전 같은 곳이다. 사장님도 영화 속 주인공 사치에와 분위기가 닮아 마음이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하다. 이곳의 카페 라테는 괜히 더 고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평일 대낮의 점심이 살짝 지난 시간이라 더욱 고요한 시간. 창너머 골목 풍경을 실컷 구경하다가 왔다. 예전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종종 이렇게 찾아와 머물다 가기도 했던 곳이라 더 아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육아 휴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준비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검색도 해보면서 느낀 건 ‘워킹맘'은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쉽지 않다는 것. 회사에서는 빨리 퇴근하려고 일의 여유가 없고, 지친 몸으로 귀가를 하면 육아에 치여 피곤함이 쌓이니 금방 지치기 십상이라고. 그렇지만 또 다행인 건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아이도 커있고, 나도 어느새 성장해 있다고 했다. 아이를 낳기 전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족도 책임지고 돌보는 것. 어찌 보면 남들보다 많은 걸 해내기 때문에 오는 피로일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정원에서

오늘은 참 좋은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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