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에뚜왈
돌이 막 지난 아기가 일주일 가까이 아팠다. 열이 40도까지 오르니 먹지도, 놀지도 않고 잠만 자려고 했다. 고열이 워낙 위험하다 보니 몇 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아기 곁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해열제 마저 들지 않아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에 갈 채비를 하는데 문득 이 상황이 무섭고 막막해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당장의 상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하루이틀이 지나고 아기의 몸에 열꽃이 피면서 회복의 신호를 보였다.
결국 아기가 다 나아갈 때쯤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요 근래 밤낮으로 긴장했던 터라 무리가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며칠 더 고생하고 나서야 온 가족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사이 복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내 집에서 조금 먼 가로수길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빵집 혹은 베이커리라고 부르고 있지만, 빵의 본고장인 문화권에서는 다루는 주메뉴가 무엇이냐에 따라 블랑제리(식사 빵), 비에누아제리(페이스트리), 파티세리(디저트류)로 빵집의 종류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도 그런 표현들을 쓰는 빵집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에뚜왈은 버터향이 좋은 디저트류 빵을 만드는 유명한 파티세리다. 메뉴도 기본 맛에서 여러 부재료로 바레이션을 둔 마들렌, 쿠키, 휘낭시 등이 있다. 구움 과자뿐만 아니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터 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텐데, 그 맛의 한 끗 차이를 보여주듯 에뚜왈의 모든 구움 과자에서는 묵직한 버터향이 난다. 물론 그렇다고 버터향만 있는 건 아니고 홍차, 레몬, 녹차, 초콜릿 같은 다양한 부재료로 맛이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마들렌 글라세 레몬'. 레몬 베이스 본체에 슈가파우더 코팅을 입힌 마들렌이다. 첫 입에는 마들렌을 덮고 있는 글라세의 바삭한 식감이, 그다음에는 기분 좋은 레몬 향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드러운 버터가 입안 가득 퍼진다.
문득 엄마가 된다는 건, 부드럽지만 조금은 약한 마들렌 같은 내 감정 위에 글라세를 입히는 과정 같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은 번거롭겠지만 그렇게 해서 글라세를 입힌 마들렌은 단단하고 매력적이다. 아기를 키우는 일이 어렵고 고되지만 결국 단단하고 강한 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그리고 밤새 내린 하얀 눈을 밟으며 혼란스러웠던 지난날의 기억들을 천천히 되짚어본다. 이 시간의 의미도 마음속으로 되새겨 본다. 그리고 모든 게 잘 지나갔음에 감사하며 다시 살아낼 힘을 얻는다.
오늘도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