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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으로 스며든 상처와의 이별

Part 2. 내 상처의 이해

by 온유


사람 성격이 변화할 수 있을까?


부모-자녀나 부부, 애인처럼 가까운 인간관계는 서로의 삶에 너무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보단 이런 소망이 생기곤 한다. 성격을 조금만 죽이기를, 말투를 고치기를, 습관을 개선하기를.


때로는 사랑으로 연결 지어 해석되기도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면 조금이라도 고치려고 노력을 해 볼 텐데.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변화하지 않았다'는 결론은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이런 상처와 실망감이 켜켜이 쌓여서 '사람 성격 절대 안 변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심리상담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할까? 상담사들은 이 명제에 대해 '그렇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부분 스스로의 삶 속에서 그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변화한다거나 변화가 장기적으로 유지된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건 다이어트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지만 누구나 해내기는 어려운 일인 것과 비슷하다.




성격일까? 증상일까?


나는 누구인가를 안다는 건 정말 추상적인 일이다. 매우 중요한 것 같지만 실체가 없으니 혼란스럽다. 나의 성격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다 보면 그 안에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체력이 너무 좋지 않은데 자세한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무엇이 원인인지를 찾아낼 수 있듯이. 몸에 열이 많은 체질도 있지만, 근육량이 많아서 열이 더 많이 날 수도 있고, 몸에 염증이 있어서 열이 나고 있을 수도 있다. 손발이 차가운 것을 체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심장근육이 약해서 손발 끝까지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듯이.


당신이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혼자 있는 동안 내면세계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느라 그럴 수도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얻어본 적이 없어서, 타인과의 관계에 미숙해서 혼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인간관계에서 얻은 상처가 당신을 내향인으로 만든 것이다.


갈등을 싫어하는 온화한 성격도 다시 생각해 보자. 모든 일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답을 정해두지 않는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면 아마 조금 더 타인의 의견을 온화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고, 다름을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내 안에 분명한 선호가 있고, 고집이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면 타인이 비난할까 봐, 혹은 말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참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자라면 타인의 말을 즐겁게 듣겠지만 후자라면 타인의 말을 듣는 게 스트레스일 것이다. 후자라면 그것은 갈등을 과도하게 피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온화함이고, 변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삶의 금기영역


대학교 상담기관에서 일하던 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의 심리검사를 했다. 그 친구의 검사 결과는 기질적으로 계속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상을 얻는 기질은 매우 약했다.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기질 또한 매우 낮아서 계속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유형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공무원 준비를 하게 된 걸까? 알고 보니 사춘기 무렵부터 집안이 경제적으로 급격히 어려워졌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결코 불안정한 직업을 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경우가 이 친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주식이나 사업의 실패, 술이나 도박으로 가정의 어려움을 초래했을 때 자녀들은 절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불행을 피하고자 한다. 삶에 금기시되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변화무쌍한 곳에서 기질적으로 즐길 수 있으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부모의 실패는 이 친구의 실패가 아니고, 부모가 재기하지 못하고 한 번의 실패에 술독에 빠졌다고 해서 이 친구가 그렇게 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물론 가족이기에 완전히 나 자신과 분리해 내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유전자에 새겨져 운명을 답습할 것만 같은 공포감은 논리나 이성으로 잠재울 수 없는 힘을 지닌 것 같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욕구는 잘 변화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고, 안정감에 대한 욕구가 강할 수 있다. 이 친구의 경우, 후천적으로 학습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변화 가능한 영역이다. 스스로의 삶 속에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재기하며 변화해 나갈 수 있다. 그건 성격이라기보다 살면서 얻은 외상의 상처이고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매 순간 성격으로 학습된다. 성격을 통해서 괴로웠고, 욕구가 좌절되었던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마음은 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멀리하거나, 사람을 너무 가까이하거나, 타인을 믿지 않거나, 타인에게 너무 의지해버리곤 한다. 내 마음이 어떤 상처를 피하고자 하는지, 그것을 알아낸다면 <나다운 삶>을 향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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