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스스로 주고받는 상처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마다 어디선가 원인을 찾고자 한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녹아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근본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또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분위기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스스로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자기 비난을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자기 성찰적 성격이기도 하고, 과도한 책임감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도 깔려 있는 것이다.
자기 비난이 어떤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을까? 아마 개개인의 힘이 더 강해진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능력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능력주의 시대의 합작일 것이다. 일에 차질이 생겼더라도 그 사람의 역량 밖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서는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제을 일으키는 강아지를 두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같은 제목을 붙이는 이유는 강아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변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이 강아지의 주인에게 있다. 무언가 다르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져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이런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능력주의 시대에는 가난한 자들이 과거에는 겪을 필요가 없었던 수치감까지 얻게 되었다고 말이다. 가난한 자들이 불운하게 타고났다며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묘사하고 묘사당하게 된 것이다. 반면 자수성가한 자들은 더 이상 가난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가난이 더 이상 불운이 아니고 노력하지 않은 너의 잘못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와 기회가 커질수록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점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 속에 얼마나 교묘하게 불평등이 잠재되어 있는지는 훗날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또 한 번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능력과 행운, 평등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사회적 현실보다는 한 사람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불평등과 불운이 얼마나 작용하였는지도 살펴보지만 결국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발견해 내는 것이다. 심리적 영역에는 변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불가능한 영역에서 자기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사람들은 타인의 영역을 내가 노력해서 어떻게든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아마도 관계중심적이고 가족적인 우리나라의 정서가 반영된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지하철에서 앉을자리 하나도 치열하게 경쟁해서 얻는 우리들에게 타인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얻고 싶은 자리에 가려면 무수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라가야 하니 말이다. 좋은 자리,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모두 갖고 싶은 사람은 많고 그 숫자는 적은 희귀템들이다. 침착하고 여유롭게 나는 될놈될인 것처럼 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싶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자꾸만 경쟁자들을 곁눈질하게 된다. 나보다 더 잘나고 대단한 것들이 보일 때마다 초조해진다. 나도 저것도 준비했어야 하는데 후회도 밀려온다.
나에게서 부족한 점이 있어서 자기 비난을 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타인의 좋은 점들을 질투하고 탐내는 경쟁심을 가지고 있다 보면 스스로에게서 부족한 점을 생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사람에게서 양립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러나 타인을 자꾸 질투하다 보면 내향인의 장점과 외향인의 장점을 두루 갖춘 인재가 되고 싶어 진다. 모든 것이 탐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이 타인에게서 보일 때마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할수록 더 완벽한 육각형 인재가 될 거라는 믿음 때문에, 육각형에서 무언가를 놓쳐 버리면 경쟁에서 밀려나 덜 좋은 인생을 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기 비난이라는 친구를 놓아주지 못한다.
자꾸만 타인이 가진 것들에 눈이 돌아간다면, 어쩌면 질투를 통해서 스스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나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끄집어내서 개발하는 과정은 사실 정말 괴로운 일이지 않은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다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런 스스로를 직면한다는 건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별로인 것 같은 나 자신을 수용하는데 도움이 되어줄 따스한 시선을 가진 친구, 상담자, 혹은 책, 라디오, 영화, 종교. 무엇이든 당신에게 따스한 시선을 가르쳐 줄 존재를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