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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오늘만큼의 담금질

Part 3. 스스로 주고받는 상처

by 온유 Feb 28. 2025


자기 이해가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길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나와서 한창 열심히 읽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도 엄청난 다독가이셔서 나보다도 먼저 읽으셨고 서로 "미움받을 용기를 내자"며 장난스레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모녀에게 그 용기가 얼마나 주어졌을까? 감명 깊은 책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곤 한다. 하지만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기까지, 제아무리 가슴을 활짝 열어둔 채 간절히 기도해 보아도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바로 발이다.


심리상담에서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달되는 길목 길목마다 필요한 작업에 대해 고민한다. 마음의 통찰은 상담소에서 함께 할 수 있지만, 특히 실제 삶의 변화까지 옮기는 길목에서는 더욱 센스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내담자가 실제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까지 함께 연습해야 '아하!' 하는 순간이 삶으로 연결될 수 있다. 누구든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머리로 배우고 가슴으로 느낀 건 참 많은데 행동으로 연결된 일은 손에 꼽을 것이다.


자기 비난을 멈추는 일도 그런 순서를 거친다. 자기 비난의 존재 이유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란 것도 머리로 배우고, 자기 비난이 시작된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탐색해 본다. 스스로의 자기 비난에 대해서 머리로는 심리적 정보를 얻고, 스스로의 오래된 기억 속을 돌아다니며, 감정과 기억과 행동들을 연결 지어 이해하다 보면 그 속에서 내가 무의식 중에 어떤 일을 계속 반복해 왔음을 마음으로 통찰한다. '아하 모먼트'라고 부르기도 하는, 심리상담의 과정 중 바로 이때가 나 자신에 대해서 근본적인 이해를 해냈다는 느낌을 주는 달콤한 순간이다. 




어디로 향하거나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자기 비난을 포함한 모든 스스로에게 해로운 습관을 고치고 싶을 때는 그냥 없애는 것이 아닌 대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자기 비난이 나에게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해로운 습관이 주는 은밀한 위안이 있음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 위안을 발견하고, 대체제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가끔 어떤 자기 비난은 현실을 외면하는 도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부정적인 면을 비난해서 마치 직시하는 것 같지만, 비난으로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지금 내 상황을 '~해야 한다'는 문장 대신 '~이다.'라는 종결 어미로 바꾸어 표현해 보자. '더 열심히 해야 해.'가 아니라, 실제 '열심히 하지 않음'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퇴근해서 책을 읽으려고 생각했다. 저녁 몇 시에 집에 왔고, 씻고 눕자마자 핸드폰을 몇 분을 어떤 콘텐츠를 봤고, 잠깐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던 찰나 허기진 느낌에 간식을 먹느라 넷플릭스를 켰고, 그러다 시간이 늦어서 또 다음 날 아침이 피곤했고...> 


실제 있던 일을 비난하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참 많은 변화의 기회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그러나 회피해 온 현실이 많이 쌓여있다면 직면이 더욱 불편할 것이다. 불편함을 느끼며 나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데 오히려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미래에는 희망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언제나 보상을 향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불편한 현실 직시는 뇌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엄청난 일이다. 


그러니까 자기 비난은 이상적인,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듯한 은밀한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으로부터 멀어지는 회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란 건 대부분 현실에 투영한 과거 경험이다. 트라우마처럼 과거에 괴로웠던 일을 우리는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맥락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트라우마와 같은 어떤 감정을 피하려고 애쓰다 보면, 계속 같은 과거의 패턴을 현재에도 반복하게 된다. 비슷한 것들에 투영하고, 미워하고, 반대되는 것을 선호하는 내 감정을 통해서.




과거라는 색안경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힘은 심리적으로 건강해지는 방향이다.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현재로 살아간다는 건 마음의 힘이 단단해졌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사람들과 관계에서 상처 입었고, 그 일을 회피하고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닌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진짜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과거의 기억으로 두려워하는 게 아닌, 현재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보통 상처를 간직하고, 과거 상처를 색안경으로 쓰고 현재를 바라본다. 그럴 때 자기 비난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도구가 되어준다. 당신의 어떤 성격을 욕했던 친구가 있었다면, '이런 성격은 최대한 숨겨야지, 이런 건 사람들이 싫어할 거야, 이런 말은 하면 안 돼.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재생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에 맞서 현실을 현실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 내 눈앞의 사람을 나의 내면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소통하고 연결되어 지금 경험해 보는 것이다.




결국, 담금질


몸이든 마음이든, 본질적으로 건강해지는 길에는 쉽고 빠른 길이 없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결국 매일을 담금질하듯 반복해서 쌓아간다. 요가를 하다 보면 선생님처럼 부드럽고 힘 있게 동작을 해내고 싶다. 하지만 그날 하루 엄청난 기운을 모아서 안 될 동작을 해내버리면 결국 다친다. 매 번 그런 욕심이 생길 때마다 오늘은 오늘의 단계를 해낼 수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심리상담에서도 언제나 요행이 없다. 때로는 내담자가 이해도 빠르고, 통찰도 빨라서, 상담자도 뭔가 더 나아가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면 어김없이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욕심은 뭔가 이루고픈 욕망이 강해서 욕심이 생길 것 같지만, 불안과 조급함이란 마음들도 잘 다독여 주어야 한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욕심을 만들지만, 불안해서 빨리 확실해지고 싶고, 조급해서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욕심 또한 삶에 넘어짐을 많이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여러 번 넘어져 보아야만 그것 또한 포기할 수 있게 될 테니 우리는 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정리하자면, 스스로의 자기 비난에 대해 머리로 하는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뭐라고 비난하고 있는지, 그게 나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는지. 과거 어떤 경험에서 시작됐는 지. 그러나 거기에서 얻는 은밀한 위안이 있고, 자기 비난이란 수단을 통해서 내 마음이 무의식 중에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하고 있음을 통찰하는 데까지 가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목표를 진짜로 이루려면 자기 비난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게 있을 것이다. 자기 비난을 대체하는, 진짜 목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마 비난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진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지금의 내 현실을 면밀히,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매일의 스쿼트이고, 매일의 러닝이다. 당장의 요행을 바라는 대신 매일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나아감을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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