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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비난이 내 삶을 도울 수 있도록

Part 3. 스스로 주고받는 상처

by 온유 Feb 14. 2025

복잡한 고민 속에는 타인이 있다.


자기 비난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뭐가 문제인지를 끝없이 찾아내지만 이게 맞는지 또다시 물어보게 된다. 마음속에서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하는 반발심과 '정말 쓰레기야.'라는 자괴감이 번갈아 나타난다. 풀어지지 않는 얽힌 실타래를 들고 심리상담소에 찾아온다. 괴롭기는 한데 고민이 이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기도 어려워 주로 이렇게 된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커다란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 고민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주로 심리상담의 첫 업무가 된다. 이때 중요하게 구분 지어줄 것은 타인의 요구와 자신의 욕구이다. 고민이 복잡할수록 풀다 보면 그 속에 타인이 깊이 개입해 있곤 한다. 자기 비난 속에는 사실 무수히 많은 타인의 목소리들과 사회적인 규범이 담겨 있다. 내가 나의 인생에 선택을 하는데 나의 선택으로 인해 기분이 불쾌와 만족으로 나뉘는 인물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복잡해진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을 퇴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내 인생만 바라볼 때 퇴사는 퇴사일뿐이지만,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 부모님, 안정적 미래를 꿈꾸는 애인, 나를 뽑아준 회사 선배 등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군가는 부모님께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척을 하기도 한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생각이 복잡해지는 과정에는 수많은 주변인의 은밀한 요구들이 더해진다.




초자아와 타인의 요구


그래서 고민이 복잡할수록 타인의 요구와 나의 욕구를 나누는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오늘은 이 분류를 이해하기 위해 기초적인 심리 용어를 배워보자.


프로이트는 성격을 3가지 구조로 나누어 설명했다. 초자아(super ego), 자아(ego), 원초아(id). 인간은 원초아만 장착한 상태로 태어난다. 갓난아이는 엄마가 내 밥을 만드느라 너무 바쁘다거나 피곤해서 몸을 일으킬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은 고려하지 못한 채 배가 고프고, 졸려서 짜증이 나는 등 내면적 느낌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원초아는 그렇게 원초적인 감각, 느낌, 욕구들을 일컫는다. 그러다가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현실적 고려를 조금씩 하게 된다. 엄마가 밥을 먹고 나서 과자를 준다고 하면 식후까지 참고 기다려본다거나, 짜증이 나지만 바로 표출하기보다 감정을 조절하려고 어린아이 나름대로 노력해 보는 것이다. 점차 이성이 발달하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욕구를 만족시킬 때까지 참는 만족지연 능력, 좌절을 견디는 등의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5세~10세 정도의 시기에 걸쳐서 초자아가 생긴다. 초자아는 내면적 느낌과 반대로 외부의 규칙에 따르는 성격구조이다. 원초아가 want였다면, 초자아는 should, must이다. 그리고 자아는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조율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과자를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집안에서 시끄럽게 뛰어놀아도 되는지 안되는지 모든 것들을 결정짓고 명령하는 부모님, 혹은 다른 양육자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초자아에 들어가는 should, 이러해야 한다는 내용은 부모님의 가치관으로 채워지게 된다. 타인의 요구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초자아이다. 초자아가 형성되면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신념을 떠올리고 행동에 반영하게 된다. 


초자아가 강한 성격은 뭔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어린 시절 경험에 따라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정직해야 한다.' '실수해선 안된다.' '피해를 끼쳐선 안된다.' '약한 모습을 들켜선 안된다.' '성공해야 한다.' '사람을 쉽게 믿어선 안된다.' '감정을 드러내선 안된다.' 등등. 부모는 아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이상향을 계속 그려 넣는다.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들로 자연스레 전달되기도 한다.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냉담하게 반응한다던지, 실수할 때마다 다급히 수습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초자아 속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초자아는 엄격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자기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상황은 모두 '문제'이자 '잘못 흘러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초자아가 강한 사람은 인내심 있게 어떤 일을 해내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아프거나 졸리거나 배고픈 느낌들을 잘 참을 수도 있다. 원초아보다 초자아가 매 순간 더 우위를 차지하니까. 자기 비난적인 성격은 힘들 때는 우울증이 될 수도 있고, 자기 비난이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원초아적 느낌을 너무 억압해서 몸의 병을 키울 수도 있다. 반면 건강할 때는 책임감 있고 성실하며 꼼꼼한 장점이 되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임감과 자기 비난적 우울은 하나의 연속된 선에 놓여 있어서 힘들 때는 비난과 우울로, 또 잘 될 때는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나타난다.




초자아를 대하는 태도


우리는 이전 글에서 타인이 당신을 비난할 때, '내가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가'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저 사람은 어떤 주제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는 작업을 했다. 자기 비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비난받을 만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휩싸일 때, 스스로가 너무 별로인 것 같을 때,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잣대들이 있어서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누구든 비난할 수 있다. (호흡법이 잘못되었다던가) 그중에서 당신은 어떤 주제로 스스로를 비난하는가? 안에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을까?


비난을 통해 초자아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성격이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어린날에 부모님이 우리들의 초자아에 어떤 메시지를 입력해 줄 때의 목적은 우리가 잘 살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인간이 되라고 입력해 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원초아가 사회적 성공이나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살곤 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원초아야말로 목적이고 초자아는 수단이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잘 지내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해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이 내가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내고 싶어서이지 않았을까? 너무 열심히 달렸는데 돌이켜보니 목적지가 어디인지 고민해 보지 않은 것처럼, 삶에서 주객이 전도되지 않으려면 아무리 조급해도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비난이 내 삶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도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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