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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Aug 24. 2021

이별 후 자책하고 있다면

이별의 복습

우리 관계를 어떻게든 더 견뎌보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끝내버리면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별하고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이 지난 일들을 복기해 보곤 합니다.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용기를 내서 카톡방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문제가 뭐였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지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또 수정해 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지나간 일 속에서 '실수'를 찾으려고 할까요?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지나간 일들을 복기하는 것'은 멈추기 어려운 일입니다.



잃어버린 통제권을 되찾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는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불안하고 무력해집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연약해지죠. 그럴 때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나 열심히 내가 한 실수,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찾게 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마음을 휘젓고 다닙니다. 아니 어쩌면 불행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즉, 내 인생에서 불행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서 자책이 시작됩니다.


물론 나의 문제와 실수를 객관적으로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이별 후에 자책하는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너무 많은 감정이 마음에 넘실대는 시기라면, '지난 연애를 머리로 분석하는 작업'은 오히려 당신을 더욱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경우의 수 속에서 '내가 바꿔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정말로 이별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책하는 시대적 이유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나'의 이해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기 어려울 텐데 말이죠. '나'를 다양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고유하고 주관적인 나의 심층적인 면,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를 함께 살펴보세요. 우리는 생각보다 사회적 영향력을 간과하곤 합니다.


자책하는 습관 역시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뭐든 노력하면 이뤄낼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엔 그렇게까지 '나'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개인이 타고난 신분을 바꾸지도 못했고, 노력을 통해서 자수성가하는 일도 흔치 않았고요. '우리'가 다 같이 해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던 때를 살아온 어른들과 '내'가 뭐든지 잘해야만 했던 시대 속 사고방식은 다를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마도 남 탓, 사회 탓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실제로 사회 때문에 개인의 삶이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나의 역할을 너무도 크게 인식하고 살아가며, 그만큼 자책도 많이 합니다. 자책이란 게 실제로 사회적 생존에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와 이별에서도 노력으로 통제하고픈 마음, 자책을 해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픈 마음들이 작용합니다.


자책이 익숙한 자기 보호 방식이라면 쉽게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잠시 자책하는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주세요. 내가 자책하는 이유는, 실제로 나에게 잘못이 많아서가 아니란 것을 말해주세요. 


"이건 어쩌면 자책으로 통제하고 싶고, 자책으로 생존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의 습성 때문이야.

내 잘못은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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