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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Aug 10. 2023

두 손의 온기가 닿을 때

나의 두 번째 한 줌



손과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맞닿는 마음


"엄마, 엄마는 왜 다른 부부들처럼 아빠랑 손을 안 잡고 다녀?" 

엄마와 산책을 하던 어느 날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랑 아빠는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될 때 손을 잡을까?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엄마는 답했다.

"하도 오랫동안 안 잡아버릇하니까 그것도 어색해 이제는"


길가면서 보면 다른 부부들은 잘만 잡고 다니더구먼!이라고 말할 찰나에 엄마는 이어 말했다.

"아아, 근데 며칠 전에 손 잡고 걸었다."

"헐 진짜? 손 잡았어? 언제? 꺅! 대-박"

생전 본 적 없던 엄마와 아빠의 손잡은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화들짝 놀라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애써 무심한 척 말을 이어나갔다. 

"그 뭐야, 아빠랑 저녁에 산책 나갔었는데 그때 손잡고 산책했었어."

"누가, 누가 먼저 손잡자고 했어?"

"아빠가 먼저 내밀었지"

아빠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니, 봐오던 그림이 아닌지라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그날의 산책은 두 분에게 오랜만에 느끼는 몽글한 저녁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았다는 소리를 듣고 난 후 '손을 잡는 것도 꾸준함이 필요하구나, 감정을 계속해서 공유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너의 손 그리고 나의 손을 맞닿는 것.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는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손을 잡으면 느껴지는 것. 그건 바로 온도이자 감정이었다.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아슬한 감정의 줄타기 끝에 손과 손을 맞잡는 장면이 나오면 화면을 통해 그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우리가 주인공들의 체온을 대신 느낄 순 없지만 그 맞닿은 손에 담긴 용기와 진심, 감정만은 모두가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누었던 온기는 세월을 입으며 닳고 닳아 식어가기도 한다. 두터워진 시간을 벽으로 삼아, 당연하듯 나누었던 온기는 미지근해지고 또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시작하며 느꼈던 짜릿했던 두 손의 촉감도 우리를 낳고 기르며 지나온 27년의 시간 동안 어김없이 옅어지고 바래진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나 또한 사랑을 시작할 때 두 손을 잡으며 나에게 닿았던 감정을 오롯이 기억한다. 몇 마디의 말이 오갔고, 눈빛이 오갔지만 말없이 내민 그 손을 잡을 때 그의 체온에 담긴 많은 말들도 함께 닿았다. 손가락 사이사이의 굴곡, 그 사이를 메우는 감정들이 흘러가지 않도록 꽉 쥐었다. 잡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만큼, 맞닿아진 그 순간만큼은 많은 것들을 상대에게 전한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배려하지 마세요

그냥, 먼저 잡으세요


며칠 전, 아빠에게 흥미로운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거닐었던 그날, 손에 땀이 나서 잠시 놓쳤었던 손을 엄마가 먼저 다시 잡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수줍은 손잡음에 아빠는 심쿵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전하는 아빠의 얼굴에는 아직도 그 순간의 설렘을 기억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빠도 엄마와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손을 잡은 지 너무 오래돼서 그 느낌마저 잠시 잊고 있었다고'말이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 배려하고 망설이던 탓에 어느 순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고 했다. 아빠가 손을 먼저 잡으면 혹여나 엄마가 왜 낯간지럽게 손을 잡냐고 뿌리칠까 봐, 갑자기 안 하던 스킨십을 해서 당황할까 봐 그런 엄마의 혹시 모를 감정을 배려하고 신경 쓰느라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아빠만의 배려였다. 손을 잡기 이전까지 했을 수많은 생각들이 무색하게 엄마는 아빠의 손을 맞잡았고, 그런 아빠의 많은 말들은 분명 체온을 담아 엄마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마음이 다시 아빠의 손을 먼저 맞잡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는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와 손을 맞잡고 산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놓쳤던 손을 다시 맞잡으며 하셨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 딸내미 손 잡고 가니까 좋네"

어릴 적 이후로는 엄마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어서 굉장히 어색했다. 그래도 엄마의 한마디로 인해 나는 손을 놓지 않고 좀 더 오랫동안 엄마의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었다. 무뎌진 세월 동안 엄마는 얼마나 우리의 손을 잡고 거닐고 싶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마주 잡을수록 가까워지고 멀어지면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감정을 말로 전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도, 오해가 생길 수 있듯이. 서로 안아주지 못한 세월이 길어지면 팔 벌려 안는 상대의 체온이 어색해지듯이. 손을 맞잡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세월에 따라 무뎌지는 것들을 거스르며 은은하게 데워가는 과정은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처음 맞잡기 전 내었던 저마다의 용기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나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언제까지나 나만의 판단으로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배려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전할 수 있는 길이 맞잡는 일이라면 언제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 한다. 






PS. 오늘 저녁, 당신의 온기를 나눌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이 누구이든, 당신의 말없는 용기에 담긴 마음이 온전히 상대의 손에 닿길 바라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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