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아래에서 요가하기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브리즈번의 주택가는 대다수가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이렇게 하늘이 흐린 날엔 구름이 아주 낮게 깔려 온 지붕 위를 뒤덮고 있는 모양새가 된다. 비 오는 날도 꽤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구름만 흐린 날엔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활동량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다.
대신 해가 질 무렵부터는 흐린 구름조차도 잘 보이지 않게 되니까 이런 틈을 타서 하루 종일 찌뿌둥했던 몸을 스트레칭하러 오랜만에 밤에 스튜디오로 향해본다.
밤에 찾아오는 스튜디오는 새벽이나 낮에 보는 스튜디오와 또 다른 느낌이다. 일단 이 시간에도 각자의 스케줄을 마치고 한 자리에 같은 목적으로 모인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고, 어두운 틈에 유일하게 빛나는 불빛 속에서 다 같이 한 마음으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예쁘다.
보통은 반복적인 일상으로 자리 잡는 것들은 내내 사랑하기가 어렵다. 매일 지내는 집이나 방도 익숙해지고, 가까이에 머무르는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도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래 지켜온 루틴이나 습관에도 권태를 느끼기 쉽다.
근데 이렇게 스튜디오에 오는 것만큼은 절대 질리지가 않는다.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올 때마다 다른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 곳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공간이다.
사실 더 모던하고 팬시한 스튜디오는 찾으면 많이 있다. 깨끗하게 꾸며놓고 페인트칠해놓은 곳. 하지만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가장 처음 발견한 이 곳을 선택한 건 특유의 아늑하고 편안한 집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 서로서로 선 긋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낌.
처음 방문했을 때 등록을 해야 하는데 따로 접수하는 카운터 없이 입구에 서로 걸터앉아 soba 어플만 다운로드하면 다 해결된다던 선생님과의 대화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주택의 뒷 공간은 정원인데 이 곳은 낮에는 soba에서 운영하는 카페 공간으로 쓰이다 밤이 되면 요가 장소로 바뀐다. 처음 여기에 저녁 요가를 왔을 때 야외에서 하늘 보며 풀냄새 맡으며 운동을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필름 카메라로 이 뒷마당을 찍어 내 방 벽에 사진으로 걸어두기도 했다.
사실 운동을 하는 60분도 좋지만 그전에 이렇게 뒷마당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도 큰 행복이다. 편한 복장으로 다 같이 모여 각자의 자리에 앉아 숨도 들이쉬고, 내뱉고, 반가운 얼굴들이랑은 가벼운 이야기도 나누고.
나는 보통 풀밭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리에 앉아 정원을 구경하며 몸을 가볍게 풀고 있다.
요가가 끝나고 각자가 사용한 매트를 깨끗이 닦아 차곡차곡 정리하고 나면 보이는 또 다른 모습. 공간의 변신이란 참 신기하다. 새벽부터 낮까진 카페로 쓰이다가 저녁부터 밤까지는 운동 공간으로 쓰이고 다시 밤부턴 아무것도 없는 0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 모든 용도로 쓰이기 위해서 낮에는 낮에 어울리게, 밤에는 밤에 어울리게, 전체적으로는 조화롭게 이 곳을 애정 어리게 가꿔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나도 꼭 모두를 따뜻하게 환영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일 아침에 먹을 사과 케일 주스용 재료가 다 떨어져서 집에 오는 길에 간단히 장도 봐왔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흐린 하루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본 하늘은 어느새 청명하게 변해 있었다.
몸도 개운하게 풀렸고, 마음도 잘 가라앉았다. 토닥토닥.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블루베리를 꺼내 깨끗이 씻어 먹는 것으로 오늘의 하루는 종료.
인생은 예측불가의 연속이라 결국은 그 불확실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낼 것인가가 내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물론 불확실한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겠지만 나는 유난히 내가 꽂힌 부분에선 확실한 걸 좋아하는 데다가 성격이 급한 부분도 있다. 내 이야기의 결말도 빨리 알고 싶어 하고 결과물에 따라 성패를 단정 짓는 못된 습관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을 나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도 새로운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생판 처음 보는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할 때도 많다.
그런 붕 떠 있는 나의 마음이 이 밤공기에, 풀냄새에 잘 누그러져서 땅에 착 하고 내려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여정마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