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브리즈번의 해 질 녘
이번 주는 일정이 꽤 바빴다. 그래서 사진을 고르고, 편집할 정신이 없었는데 주말을 틈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긴 시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시기의 나를 돌아보는 게 나는 여전히 설레고, 그 시기의 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매일매일을 기록해두는 이유는 여러 시행착오를 혼자 겪어내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아마도 평생 살면서 이토록 젊은 날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오는 용기 있는 결정 같은 거, 두 번 하긴 힘들겠지?
후회는 없다.
꼼꼼히 블라인드를 내려 햇빛을 가려두고 잠에 들지만 아침 7시쯤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새벽 6시경 도로 공사를 하는 소음 덕도 있지만 늘 야행성으로 살아온 내가 이상하게 이 곳에서는 빨리 잠들고, 빨리 깬다.
생체리듬을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일어나면 항상 제일 첫 번째로 하는 건 이불 정리.
오늘은 밖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한 잔 만들어 마시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씻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누구를 만날 약속이 있는 건 아니어도 그냥 단정하게 깔끔하게 준비해서 나가고 싶은 날이 있다.
운동 갈 땐 무조건 내추럴한 모습으로 (자다 깬 모습으로) 후다닥 튀어나가지만 그래도 오늘은 맘에 들게 준비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집 근처, 요가 스튜디오 근처 카페 플랜티로 향하는 길. 알게 된 이후로 참새가 방앗간 찾듯 자주 찾아가서 바리스타가 슬슬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 곳에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한다. 가끔은 노트북을 일일이 들고 다니는 게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은 웬만하면 일기 형태로 남겨두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적어두다 보면 지난날 내가 모든 선택들을 내릴 때, 그때의 내 마음은 어땠었는지 생동감 넘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앞으로 내릴 선택들에 레퍼런스로서 쓸 수도 있게 된다.
플렌티는 약간 세련된 헛간 같은 느낌이 있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혼자 노트북을 들고 온 사람들, 둘셋이 모여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레깅스 차림으로 아침 먹는 사람들,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섞여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
무엇보다 직원과 바리스타들이 너무 친절해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집에 와서는 케일 사과 주스, 딸기, 두부를 먹었다. 이렇게만 보면 거의 채식주의자 느낌인데 몸이 한 방에 망가진 이후로 하루에 한 끼는 건강한 음식으로 먹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래고 케일만큼은 chopped kale로 다 다듬어져서 나온 거라 그만큼 준비 시간이 단축되어서 좋다.
참고로 나에게 있어 두부 부침은 만드는데 약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가끔 이렇게 누워있다 보면 내가 브리즈번에 혼자 있다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한쪽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면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상처 받는 동안 여기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란다.
가끔 그런 느낌 있잖아. 지금 이 기회가 전부인 것 같은 거. 내가 지금 목숨 걸고 있는 대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거 같은 기분. 그래서 더 잘해야 하고 놓쳐선 안되고 실수해선 안돼 하는 생각들.
근데 보통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면서 실수 연발에,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기 일쑤다.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 해지는 순간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나는 거다.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나와 상관없이 어느 한쪽의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기회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야속할 정도로 평화롭게.
마음에서 조금만 힘을 풀어주자.
이상하게 사람마다 시기라는 게 있더라.
뭔가를 얻는 시기 - 뭔가를 다 놓치는 시기.
힘을 주는 시기 - 힘을 빼는 시기.
욕심을 내는 시기 - 욕심을 내려놓는 시기.
내 손으로 뭔가를 놓아야 하는 시기도 있다는 걸 나는 오랜 시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 땐 보통 호흡이 힘들다. 나도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숨을 멈추게 된다.
그때 숨 쉬고 호흡하는 법을 알려준 게 요가였다.
이렇게 운동가는 풍경이 예쁘고 바람이 선선한데 저녁 운동을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 이 시간이
다시 숨 쉬는 법과
다시 걸음마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과도 같다.
꼭 한 가지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를 자꾸 괴롭히지 말고
한 번 이 방식으로 살아봤다면,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봐도 돼.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