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브리즈번 랜선 집들이

마음 둘 곳, 마음 둘 일 늘려가기

by Minah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까지. 이사를 참 여러 번 다녔는데 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애써 적응한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쉬운 마음 반,

새로 알아갈 동네에서의 생활이 기대되는 마음 반.

특히 브리즈번에서의 내 첫 숙소는 5층 정도의 아파트먼트였는데

오늘부터 머무는 곳은 무려 60층이 넘는 초고층의 타워라서 정말 다른 느낌일 것 같아

한 편으로는 설레기도 하고, 또 떨리기도 하는 마음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로 브리즈번 랜선 집들이를 시작합니다.


IMG_7673.jpg?type=w966 CBD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스카이타워.


이전에는 한적한 웨스트엔드에서 지내다 보니 초고층 빌딩들을 볼 일이 많이 없었는데 나의 두 번째 숙소 스카이타워는 층수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위치로는 브리즈번 보타닉 가든 바로 옆이자, CBD의 정중앙에 위치해있어 접근성이 최고라고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니까 스카이타워는 별도로 호텔 운영도 하고 있어서 호텔 리셉션도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IMG_7675.jpg?type=w966 인스펙션은 항상 꼼꼼히.


나 같은 경우는 숙소를 알아볼 때 주로 보는 것들이

1. 안전한지

2. 깨끗한지

3. 주변에 큰 마트가 있는지 이 정도 되는 것 같다.

정말 아주 아주 긴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아늑함의 최대치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밖에서 일정을 보내고 홀로 불 꺼진 문을 열고 집을 들어올 때 어수선하거나, 위험하거나, 위생적으로 더럽거나, 외딴 섬 같은 느낌이면 성격상 외로움에 못 견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하게 한국을 떠나와 호주 브리즈번에서 집이란 곳이 어떤 곳이 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집이 따뜻한 공간이길 바라고, 누구든 환영하는 아늑한 느낌을 주길 바란다.

집에 오고 싶어 지는 그런 집.

in the warmest manner.


IMG_7676.jpg?type=w966 1층 출입구


웨스트엔드에 살 때는 한국인은 물론 아시안도 집 근처에서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도심의 한가운데로 와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간중간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과 아시안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유학생 같기도 하고, 워홀러 같기도 하고. 모두가 각기 다른 사정으로 한 곳에 모여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그렇게 멀리서 제각기 모여, 우연히 마주치고, 스쳐 지나간다.

IMG_7679.jpg?type=w966 스튜디오 전경.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눈에 들어오는 집안 풍경. 정면엔 거실이 있고, 우측엔 키친이, 오른쪽으로 쭉 따라 들어가면 화장실과 침실이 나온다.

이렇게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니까 마음에 안정감도 나름 커지고, 혼자 머물기에 적당히 넓은 크기의 집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IMG_7677.jpg?type=w966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


요리도 제대로 못하는데 나는 왜 항상 부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까? 브리즈번에서라도 요리를 시도해보고픈 나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고, 일어나서부터 부엌으로 와 커피를 만들어마시는 모닝 루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항상 부엌에는 이렇게 스툴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낮이고 밤이고 저 스툴 위에 앉아 밥도 먹고, 노트북도 하고, 하루 일정을 짜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스툴에 앉아있는 그림도 상상해본다.

IMG_7681.jpg?type=w966 보타닉 가든이 보이는 침실


침실로 들어오면 내 방에서 보이는 쪽의 풍경은 보타닉 가든이다.

저 멀리 보이는 초록 초록한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들뜬다.

아침에 눈 뜨면 왠지 모르게 오늘 하루 좋은 일 생길 것 같은 그런 마음.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날엔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볼 수도 있다.

IMG_7682.jpg?type=w966 거실 풍경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동일한 풍경이 보인다.

거실 탁자로 먹을 걸 챙겨 와서 티비 보다가, 바깥 풍경 보다가, 오른쪽 발코니에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보다 보면 시간이 한 시간씩 두 시간씩 흘러있다.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IMG_7690.jpg?type=w966 꼭대기층 수영장 라운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커뮤니티 시설을 구경하러 스카이타워 꼭대기층으로 올라왔다. 꼭대기층 한편엔 헬스장과 수영장이 있고, 다른 한 편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180도가 통창으로 되어있어서 브리즈번 시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IMG_7695.jpg?type=w966 수영장에서 보이는 브리즈번.


이렇게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항상 느껴지는 건 세상은 정말 넓고 나는 정말 작은 존재였다는 것.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인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대며 지냈는지.

호주에는 오직 한 길만 바라보며 모범생처럼 지내온 나에게

'인생에는 또 다른 루트도 있어.' 하고 말해주는 그런 묘한 인상과 분위기가 있다.

물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어디든 장점도 단점도 있는 거겠지만

이 곳에서 느끼는 특유의 평온함과 친절함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IMG_7700.jpg?type=w966 햇살이 비추는 곳.


그래서 나는 이 곳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자주 생각하고 다짐한다.

지금 어렴풋이 말해보자면


마음 한편에 늘 여유가 있는 사람.

다른 사람도, 나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

상황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사람.

나의 가족, 연인,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그리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사람이다.


써놓고 보니 따뜻한 햇살이자 시원한 그늘 같은 그런 느낌이네.


IMG_7711.jpg?type=w966 나를 잘 부탁해.



어쩐지 이 곳에서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여기서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아주 길어질 것 같은 느낌.


잘 부탁할게. 잘 지내보자.

IMG_7715.jpg?type=w966 도심 한복판.


짐을 대충 풀어놓고, 저녁 요가 수업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스카이타워가 완전한 도심 속에 위치해 있어서 이렇게 나오면 사람도, 주변에 식당이나 편의시설도 많다.

특히 정장을 갖춰 입은 퇴근길 직장인들이 많이 보여서 생경한 느낌이었다.

IMG_7716.jpg?type=w966 요가 스튜디오 뒤편에 있는 강에서 선셋 보기.


저녁 수업 시작 시간보다 넉넉히 일찍 도착한 나는 스튜디오 뒤편의 강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나라든, 어느 동네든 강변을 따라 산책로를 잘 마련해놔서인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이 날,

정말 좋았었다. 나는.

IMG_7720.jpg?type=w966 나의 핸드폰 배경화면.


항상 석양을 보고 있으면 사람 마음이 좀 뭉클뭉클해지는데 유난히 마음이 많이 설레는 날이다.

이 날 해 질 녘 색깔을 바라보며 느꼈던 황홀함과 설렘과 그 바람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IMG_7723.jpg?type=w966 어김없이 저녁 수업.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요가 수업 시작 시간에 맞춰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요가 스튜디오는 웨스트엔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사 간 후에 옛 동네로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 봤자 버스 타고 20분 정도지만.

어느새 내 마음의 고향처럼 든든한 지원군이 된 Soba 스튜디오다.

어딘가 마음 둘 곳이 있다는 건 이렇게 행복한 일.

어쩌면 우리 다 살면서

하나하나

내가 마음 둘 곳,

내가 마음 둘 사람,

내가 마음 둘 일.

이런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행복의 과정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

중간중간 내가 겪는 시행착오도 그렇게 뼈아프지만은 않은 거다.

때로는 마음 두어선 안될 곳에 나를 던지고,

마음 두지 않으면 더 좋았을 사람에 희망을 걸어보고,

결국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상처를 얻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찾아낼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다를 거라는 그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내가 잘 찾아내 볼게.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