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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랑 Mar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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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와서 내심 고백하는 바이지만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것이 맞다면,

 아무리 마틸다 같은 어린 소녀라고 하더라도

 악마에게서 무엇이었던지

 하나쯤은 받아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마틸다가 가장 최근에 쓴 일기장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저에게 유일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과 도벽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재능들을 어엿하게 자라기까지

 아주 유용하게 써먹어 왔으니

 언젠가는 무슨 벌이라고 받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틸다는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안경이 생기길 기다리는 아이와 같았다.

 아무 기차를 잡아타 놓고

 길을 잃기를 바라는 이방인과 같았다.

 담배를 피우며 폐암에 걸려

 죽기를 바라는 청소년과 같았다.

 그런데 마틸다가 밤새 텔레비전을 보았는지 아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타고 내린 기차는

 정확하게 목적지 앞에 도착했던 것이다.

 마틸다는 항상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잘 뛰어다니는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가 바람처럼 신나게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친구들이 멀리 뒤쳐져 있었던

 그 당혹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틸다가 꼭 감았던 두 눈을 떴을 때

 바로 정확히 그 곳 앞에 멈추었던

 그 뜻하지 못한 허탈함이

 오래 전 사라진 눈 앞의 섬망을 훑는

 어린 소녀의 망막 속 불안감이

 어떻게 벌 받은 아이의 슬픔과 눈물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틸다는 세례식 때 선물로 받았던

 하얀 새의 깃털 같은

 아름다운 미사보를 머리에 얹는다.

 머리 위에 다이아몬드를 얹듯이 얹는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지 알 수 없다.

 슬프게도 주임신부님의 사제복은

 물기 어린 도라지꽃처럼 아름다웠다.

 마틸다는 자신이 악마로부터 받은 재능을 사용한 것을 사죄하려다가

 다시 눈을 감고

 선악과에로 유혹한 뱀처럼

 벌을 받게 해 달라고 빌려다가

 다시 눈을 감고

 결국은 아름다운 보라색의 대림 주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도록 빈다.

 나는 마틸다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조용히 미소짓곤 했다.

 그녀는 실망을 안을 때도 있고

 유혹을 느낄 적도 있었다.

 그 어느 쪽이든 마틸다에게는 항상

 불안과 고통만이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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