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5
아침 일찍 일어나 호주 계좌를 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괜히 부지런을 떨었다. 걱정하지 않기로 해놓고, 어딘가 걱정에 당한 기분이다.
나는 시드니에 당장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 포크리프트(지게차) 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사서 이동하는 게 지금의 계획이다. 해치워야 할 일이 많다는 건 불확실을 더해주고 그만큼 또 걱정거리도 늘어나는 듯싶지만, 우선은 차근차근 할 일을 해치우기로 한다.
점심 먹고 중고차를 알아볼까 하며 카페에 들렀다. 중앙역과 가까운 6 oz coffee, 구글맵에 커피 평점이 좋아 들렀다. 그런데 이곳 사장님이 한국분이다. 알아보려던 중고차는 못 알아보고 수다만 잔뜩 떨었다. 몇 시간 동안 TFN 번호만 겨우 발급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렇게 즐거운 줄이야!
걷다 보니 마음은 비워지기 시작했다. 당장 해야 할 건 많다. 하지만 우선 주디와 함께 시드니의 랜드마크를 방문하기로 한다. 언제 떠날지 모를 시드니이기에 지금을 놓치면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았던 시드니에 정이 들기 시작하는 기분이다. 도착한 지 하루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마음이 이리도 변덕스러운지.
주디는 정말 재롱둥이다. 재밌는 표정을 어찌나 많이 짓는지, 또 말은 어찌나 잘하는지, 한참을 웃고 또 걸으며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겼다.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어느 벤치에 멈춰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저 멀리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오페라 하우스를 찍고 있는 여행객들이 나타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마침 한국분들이기에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고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보내드렸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주디와 내 사진도 얻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는 게 너무나도 즐거워서 자꾸 웃음이 난다. 어딘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보타닉 가든으로 쭉 걸어 나오니 세인트 메리 성당이 보인다. 이곳에서 'PEACE BE WITH YOU'라는 문장을 만났다. 오늘 나의 하루를 압축한 문장 같다. 평화는 이리도 금방 내게 찾아오는 거였다. 아니, 찾아오는 게 아니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분명 한식을 오래 안 먹을 작정이었는데, 우리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첫 트라이얼 근무를 하고 온 지나를 달래주기 위함이다. 지나의 하루는 고됬고, 그런 지나를 달래주려는 듯 한식은 더 맛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수업용 USI도 받고 중고차를 사기 위해 메시지도 몇 개 보내두었다. 그래, 나는 지금 아주 잘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