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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2. 2023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

몽(Hmong, 메오Meo)족의 삶과 애환1

<오지 기행아시아를 가다고산족 순례>

(Hmong, 메오Meo)족의 삶과 애환1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때 절인 아이들

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아낙들

오다가 배고프면 땅을 파 귀뜨라미 잡고

산 벼 훑어 주린 배를 채우며 

성긴 이빨 사이로 씹던     

평생 이 산길 오르내리며

메뚜기처럼 밭뙈기에 붙어살던 사람들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 

학처럼 날아오른다

         -‘오지 산마을에서’, 윤재훈           

                                                               


새해 아침, 몽족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가족.

           


(ban마을) ‘후아이 픙 마이에서      


“여종 쏭찬”*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들이 중국에서 내려와 그들 스스로 <몽 차이나>라고 부르며, 나이 든 사람들은 중국어를 더듬거린다. 더러는 미얀마에서 압제와 가난을 피해 넘어왔다고 하기도 한다. 특히 라오스에도 많이 흩어져 살며 타일랜드·베트남 등에도 산다. 라오스에 사는 몽족 가수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된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오지 산 속 몽족 마을에 돌리며, 이방인의 아픔과 가난을 달래며 먼 옛날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 낸다. 

이들은 주로 이웃 나라 국경을 넘어 자국민들이 살지 않은 거친 오지 산속으로 딱정벌레들처럼 기어들어가, 보기에도 숨가쁜 까끌막 산들을 화전하여 농토를 만들며 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중국계라 그런지 타이 북부 오지 산간에서 제일 많은 깔리양족 부족들의 마을에 빙 둘러싸여 단 한 마을이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게 산다. 

그들의 새해는 연말부터 시작되어 약 보름 정도 진행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후손이 태어나고 조국이 되어버린 타이의 새해는, 타이력으로 가장 무더워지는 4월 13일이며 그날부터 세계 최대의 물 축제 <송크란Songkran>이 시작된다.       


    

몽족의 설날 전야, 등 뒤로 수확한 쌀이 배부르게 쌓여있다


    

한 해를 보내는 오지 산간 마을 풍경

연말이 다가오면 스물여섯째 날쯤부터 이미 그들의 새해는 시작된 듯하다. 매일 이 집 저 집에서 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며 실컷 먹이며, 연말 내내 마을이 잔치 분위기 휩싸인다. 돼지가 부족하면 옆 마을에 가 사오기도 한다. 

 아침이면 집을 나간 돼지는 온 산을 돌며 뱀을 우적우적 씹어 먹거나 갖가지 구근 식물을 파먹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 잔다. 그러므로 보통 잡으며 일부를 생으로 먹고 나머지를 장작불에 푹 삶는다. 

어떤 날은 그 조그만 산간마을에서 돼지를 잡은 집들이 많아, 만약 그 집을 다 돌려고 단단히 맘을 먹고 나서도, 반도 돌지 못하고 중간에 술이 취해 어느 집에선가 발걸음이 멈추기가 일쑤다. 이방인에게도 친근해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몇 집 돌다보면 금방 친해지고,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 웃는다.  

그렇게 서로를 토닥거리며 하루해가 저물어 가는 산마을. 삼거리 초입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근처에 사는 <깔리양(카렌) 빠가요족>들이 지나가는 입구다. 갑자기 이 산속에서 고기 냄새 진동하니 깔리양 족들은 그냥 가지 못하고 점심이나 한 끼 때워볼까 하고, 삼거리에 있는 살라(정자)에 앉아 지나가는 몽족들에게 친근한 웃음을 보낸다.          


까치 까치 설날 아침, 필자도 끼었다.

  

사방을 빙 둘러 나무나 양철로 막았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냥 땅바닥 위로 제법 넓다. 사철 무더운 나라이다 보니 위쪽은 막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며, 판자의 높이들은 도래미파 제각각이다. 한 쪽에는 나무 칸막이로 두어 칸 대충 막고 평상 위에 시커멓게 때에 절인 모기장이 하나 쳐있으면 그곳이 방이다. 

또 귀퉁이에 문도 하나 없이 막아져 있거나, 장작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하면 거기가 부엌이다. 6, 70년대 우리나라 정개(부엌)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합판으로 대충 막으면 방이다.

땡간(결혼)을 막 한 새신부도 그렇게 한 칸 차지하고 살거나 바깥쪽에 움막처럼 한 채 지어져 있으면 거기가 신혼 방이다. 방 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수선 하다. 바닥에는 수많은 옷과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어디 발 디딜 틈도 없다. 그래도 더운 나라라 조석으로 샤워를 하고 밤이면 그 시커먼 모기장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아침이면 나오는데, 아이들도 많이 낳고 쑥쑥 잘 자란다. 

얇은 합판으로 막은 방에는 천정도 없으며 부모님 방과 같이 붙어사는데, 어떻게 자식들 낳고 살아갈까 하는 이방인의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은 모양이다.      

이 청정한 오지 산마을에서도 세제나 비닐 등을 쓰는 것이 도시 못지않다. 마치 7,80년 어느 언저리쯤 8시 주말연속극 부잣집 부엌처럼, 문명의 부산물을 많이 쓰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거기다 향기 세제를 너무 많이 쓰니 빨래줄 근처에 가면 머리가 아프고 재치기가 나와 갈 수가 없다. 아직 환경오염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으며 비닐도 그냥 산에서 태운다.    

   

“인간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어디를 가나 자연이 몸살을 앓으며, 

순식간에 황폐화 되어 버린다.”     


     

앳된 엄마, 반찬도 없이 밥을 들고 다니면 먹는다.

    

살아있는 화석, <조혼>, <일부다처제

몽족의 체형은 키가 작고 전체적으로 온 몸이 동글동글하며 아프리카 니그로인들 정도는 아니지만, 엉덩이가 약간 튀어나온 듯하다. 특히나 여성의 체형에서 그런 인상을 많이 받는다. 소녀들은 13세가 넘어가면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보통 16, 7세의 넘어가는 소녀들은 아기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이들은 망태를 매고 낫을 들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침부터 들판으로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이면 어느 으슥한 곳에서 서로 만나 서투른 연애들을 할 것이다. 그들의 휴대폰 안에는 어김없이 싸이나 BTS의 음악이 들어있으며, 마을 골목이나 운동회 때는 무대에 올라가 말춤을 춘다.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산마을 사람들은 명절날이 되며 학교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모두 모여 논다. 설날 몽족 청년들과 어울려 학교에 놀러가니 이미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져 있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팽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소녀들은 옛날 우리처럼 오자미를 가지고 놀았으며, 잠시 후 식이 시작되자 무대에 올라가 말춤을 추었다. 

잠시 후 나도 그들의 전통의상을 입은 채 끌려 나가,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와 ‘북한강에서’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마을에 설치된 확성기를 따라 온 마을로 퍼져나갔다. 다음날 인근 깔리양 족 마을에 가니, 어제 내가 노래 불렀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나 있었다. 마치 화성인이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하루에 몇 집씩 돼지를 잡는다.

남자아이들도 15세 정도가 넘어가면 동네 잔치에 끼여 어른들이 따라주는 60도의 독한 몽족 위스키도 스스럼없이 마시며 담배도 같이 피우기 시작한다. 

또한 부인이 두 사람인 경우는 흔하며 26세의 유난히 키가 작고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 <허>라는 사내는, 17세와 24세, 25세 때에 벌써 세 번째 결혼을 해 마지막 부인과 살고 있다. 이 마을에도 세 명의 부인을 둔 사람이 있으며, 마당 안에 세 채의 집에 함께 살면서 아침이면 들일도 함께 나간다.      

타이 TV <어메이징 타일랜드Amezing Tailand>에 나온 <빤 웅 마을>에는, 부인이 300명이나 되는 사람도 있다. 가족들은 학교 기숙사처럼 긴 나무 집에 함께 모여 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그 인근의 집들도 몇 채 더 가지고 있어, 마치 작은 마을에 모여 사는 듯하다. 철 지난 카세트에서 ‘낙화암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며, 현대판 삼천궁녀라도 보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도 그 부인이 몇 명인지 잘 모르며, 명절 때 그 후손들까지 다 모이면 마치 학교를 연상시킬 듯하다.         

   

3대가 모여 사는 가겟집.

마을 삼거리에는 하루 종일 오토바이들이 이따금씩 지나가면, 자그마한 가게가 세 군데 있다. 그곳에서는 국수와 튀김, 찐계란 같은 가벼운 먹거리들을 팔며 점심때가 되면 이웃 마을 사람들이 몇 사람씩 보인다. 특히 이 작은 마을에 분교가 있어 지나가던 부모들이 아이들을 가끔 불러내 국수를 사주는데, 막 자라나는 아이들은 국수 양이 턱도 없이 부족해 부모들이 비닐에 싸온 시커먼 주먹밥을 내놓으면 허겁지겁 먹는다. 학교에서는 텃밭과 닭도 키우며 자그마한 경비를 충당하는 듯하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깊은 산 속에 있는 깔리양족 마을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를 보고, 스물여섯째 날 마을에 꼭 놀러오라고 몽족 친구 ‘찡증리’에게서 언질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가니 마을 입구에서부터 어른들은 벌써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길도 약간 들떠있는 듯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들의 설날이나 추석 전야처럼”     

산등성이 옥수수 밭이 

하늘에 닿아있다     

가파른 능선 몇 개를 

단숨에 넘어간 

키 큰 산 벼들이

바람이 불자

다시 산등성이를 넘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밭고랑에서 

평생 귀또리처럼 더듬이를 벼르던

이국의 농부들

이제는 내 고향처럼 익숙해지는데

산 너머 고향소식 풍문으로라도 들리면 

또 다시 안절부절 해진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때 절인 아이들

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아낙들

오다가 배고프면 땅을 파 귀뜨라미 잡고

산 벼 훑어 주린 배를 채우며 

성긴 이빨 사이로 씹던     

평생 이 산길 오르내리며

메뚜기처럼 밭뙈기에 붙어살던 사람들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 

학처럼 날아오른다

         -‘오지 산마을에서’, 윤재훈     


*안녕하세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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