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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2. 2023

몽(Hmong, 메오Meo)족의 삶과 애환

(Hmong, 메오Meo)족의 삶과 애환  


      

고국에서는 일제 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깔리양족* 마을에서/윤재훈       


  

카렌 마을 초입

    

마을 입구를 따라 빨간 색으로 곱게 옷을 갈아입은 ‘크리스마스 꽃(홍성목紅星木, 포인 세티아Poinsettia)’이 한 달 이상 피어, 깔리양 족들이 사는 ‘쿤 맬라노이’마을길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 아래 땡볕을 받으며 무더기로 한들거리는 흰 바탕에 보라색 무늬가 언뜻언뜻 섞인 작은 국화들, 우리 산하의 망초꽃 마냥 무더기로 살랑거린다.

사철 여름이며 일 년에 삼모작이 가능한 나라, 지금은 수확의 계절이다. 노란 들녘은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흘러내린다.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깨어나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 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 다시 해맑아지고

가을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 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진다 

               -깔리양족* 마을에서/윤재훈         


(카우폿 까스라기들이 자욱하게 내려앉는 탈곡현장

    

카우폿(옥수수탈곡의 계절.

“싸르락 사르락”, 잔등을 넘어가는 거대한 밭 위로 마른 옥수수대 서걱이는 소리, 그 때마다 순례자의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는데, 고개를 넘다보니 기계 위로 날려가는 옥수수 껍질이 자욱하다. 벌써 한 달 이상 진행되는 탈곡 장소에는 미니트럭들이 쉴새없이 탈곡된 옥수수 알갱이들이 담긴 푸대들을 실고 떠나고, 근처 숲이나 농막에서는 심심풀이 포커를 하고 하고 있다. 카우폿 양이 엄청나 여기저기서 탈곡이 진행되고 있지만 매일 밤샘 작업이다.

눈치 빠른 깔리양족 아낙은 그 앞에 작은 탁자를 놓고 소세지, 튀김, 찐계란 등을 팔고, 누군가는 한 봉지에 20밧(약800원) 하는 40도 깔리양족 위스키를 사가지고 와 안주도 없이 권한다. 우리의 깡소주 나팔은 그나마 양반인 듯하다. 

먹음직스럽게 노랗게 익은 옥수수를 하나를 집어 먹는데 이빨이 아플 정도로 딱딱하다. 그나마 하나 다 먹고 나니 몽족 사내가 먹지 말라고 한다. 이 산간 오지마을도 유전자 조작(GMO)이 된 옥수수라고 한다. 이곳도 농약 쓰는 양이 만만치 않고 세제도 마찬가지이며, 아무 의식 없이 버리는 비닐봉지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심심산골이라도 인간이 들어와 살게 되면 자연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앙이다. 어느 집이나 어두침침한 집안에 카우폿과 카오(쌀) 푸대들이 배부르게 쌓여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하다.     

   

산더미 같은 카우폿에 온 동네 소들이 달려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고갯길을 넘다보니 한 달 이상 지속되던 옥수수 탈곡 현장도 연말을 새해를 맞아 잠깐 쉬고 있다. 그 옆으로 옥수수 껍질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3, 40여 마리는 될 듯한 누렁이와 회색빛 동네 소들이 모여 잎을 먹다가, 낯설은 사람이 다가가자 일제히 고개를 들고 움직임에 주시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네팔인들처럼 이마에 망태의 띠를 걸고, 깔람삐를 나르는 아낙들.

   

깔람삐(양배추)수확   

이 지역에서는 특히나 깔람삐를 많이 재배하는데, 망태 당 임금을 지급해 이 한적한 산마을에서 유용한 일거리가 될 듯하다. 거기다 지금은 고추, 당근 등까지 대규모로 수확해, 밤마다 구불구불 오지 산속을 서너 시간 간 이상 돌아 치앙마이에 내다팔고, 새벽이면 돌아온다. 3개월이면 수확한다는 깔람삐는 시도 때도 없이 산비탈에 심으면 특히 몽족들에 의해 많이 재배된다. 

집집마다 대부분 소유한 일제 미니트럭에 차가 휘어지도록 실으면 3,000키로 정도가 된다. 이것을 도시로 나가 도매로 넘기면 15,000밧(약60만원) 을 받으며, 여기서 기름과 저녁 밥값으로 1000밧쯤 때면 나머지가 남는다. 

사각사각 과도로 깔람삐 베는 소리가 감칠맛 나게 들리는, 산모롱이 막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기린처럼 고개를 높이고 보니, 고추밭 울타리 너머에서 깔리양 아낙이 나를 부른다. 밭으로 가보니 망태를 맨 아낙 둘과 아저씨 하나 땡볕 아래에서 엄청 맵고 아주 조그만 타이 고추를 따고 있다         


땡볕 아래 남자는 페인트통에 부인은 망태에, 타이 고추를 따고 있는 깔리양족 부부.

   

조그만 것들이 건방지게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붉게 충혈되어 

한껏,

신기新氣를 뿜어내고 있는

땡볕 아래,     


꽃인 줄 알고 오색나비도 날아와

살살 꽁지를 몇 번 문질러 보는  

건너 마을 신리기 댁도

가랭이를 모두운 채 

세월 속에 허생원이라도 기다리는지

단잠에 들어

살 냄새 솔솔 풍기는 한낮     


그 위로 흔들리던 우주가

포개진다

          -<타이 고추>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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