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뵙고 오는 차 안, 엄마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엄마의 미간에 깊이 파인 주름과 함께 차 안의 공기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엄마는 창 밖을 말없이 내다보다 눈을 지그시 감았고, 이내 가방을 베개 삼아 짧은 잠을 청했다. 집에 다 도착하도록 엄마는 깨지 않았다. 그리고 미간의 주름 또한 펴지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를 뵙고 오는 날은 늘 그랬다. 찾아뵙는 발걸음도 그리 가볍지는 않았으나 돌아오는 발걸음은 항상 두세 배는 더 무거웠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해서가 아니다. 그저 상황이 답답하고 짠해서 그랬다. 어찌할 수 없는 먹먹함이 엄마의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헤어지고 올 때면 늘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고향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나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떨어지려는 눈물을 붙잡아 두려고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렸다. 어둑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산기슭도 보았다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을 무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 때문에 가슴이 먹먹한지 또렷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정말이지 눈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카시트에서 잠든 아이를 돌아보는데 그만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앞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던 남편이 거울을 통해 뒷좌석을 살폈다. 왜 눈물을 보이냐며 말끝을 흐렸다.
슬퍼서, 기뻐서, 짜증 나서, 답답해서... 어떤 감정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똑 부러지게 말할 수도 없는 어떤 감정들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두 분께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짠하고 마음 아팠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더욱 그랬다.
이십여 년 전, 우리 부모님은 동네에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두 분은 따로 지내는 부부가 되었다. 이혼을 하지 않았으니 아직 부부이면서 서로 애써 소식을 전하지 않으니 남보다도 못한 사이다. 그 아슬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우리 남매는 눈치를 보고 상황을 살핀다. 다행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대부분의 화제가 아이에 집중되어 서로가 편해졌다. 아이의 옹알이 한 번에 집안 가득 함박웃음 꽃이 핀다. 하지만 그뿐이다. 무거운 이야기와 어두운 이야기는 서랍장 깊숙이 숨겨둔 채 아이의 재롱만 보다 서로 헤어지고 만다.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가 있는 것은 아니나 무언가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많은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가족, 생각만으로도 힘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치고 힘든 몸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치유받고 충전하던 시절. 하지만 어느새 나에게도 가족이 짐이 되어버린 걸까.
요양원에서 돌아오던 길.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고 망설였으나 나는 엄마에게 차갑게 말했다. 나이가 드셔서 요양원에 모신 것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이젠 좀 내려놓으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걱정만 하니 머리가 아픈 것 아니냐고 모질게도 쏘아붙였다. 엄마는 한숨을 쉬다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허공에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가 엄마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에게도 내가 짧은 한숨이 되는 날이 올까. 힘이 되진 못하더라도 짐이 되진 않아야 할 텐데.
욕심인 줄 알면서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나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게 하진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