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화 Jun 20. 2019

우리는 둘째를 기다립니다

 밤새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난 두근거리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 꿈인지 생시인지 아주 잠깐 헷갈렸다.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나고 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얼른 남편에게 달려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분주했고, 손놀림이 바빠졌다. 임신테스트기에 소변이 스며들어 서서히 빨간 줄이 생기는 순간이 계속해서 보였다. 설마 아닌가. 설마 임신일까. 꿈속에서 나는 현실에서 만큼이나 조바심을 냈다.


 스르르 눈이 떠졌다. 새벽 6시였다. 일어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내 옆에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두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남편과 우리 아들. 꿈이었구나 싶으면서도 현실인가 싶어 눈을 몇 번이나 더 껌뻑거렸다.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아닌 척은 하지 않았지만 대놓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나 또한 마음속으로 제법 둘째를 기다리는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지난밤에 잠들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임신 테스트를 해보자고 약속했었다.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 감동의 순간을 조용히 혼자 맞이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물속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빨간색 줄이 잠시 일렁였다. 그리고는 서서히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뱉어졌다. 꽤 오래전 기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빨간색 줄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면 안 되는 거였다. 예쁘게 일렁이다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번쩍 떠올랐다. 빨간색 줄은 하염없이 오른쪽으로 밀려나갔다. 줄이 지나간 왼쪽 바탕엔 새하얀 종이만 남아 있었다. 저 자리에 줄이 남았어야 했다. 그렇다. 임신이 아니었다. 현실은 꿈과 반대라고 하더니, 정말 꼭 반대였다.


 사람에겐 촉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우리 부부에겐 이제 촉도 감도 없어진 지 오래인가 보다. 지난 며칠간 우리 부부는 작은 기대 속에 나름의 행복을 누렸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 서로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다고 말이다. 심지어 나는 아주 미미하지만 몸의 변화를 몸소 느낀다며 김칫국을 들이켰더랬다. 남편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년 봄이 시작할 즈음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며 오지도 않은 내일을 이야기했다. 괜히 첫째에게 동생이 올 거냐는 질문도 해봤다. 어르신들 말씀에 첫째에게 물어보면 둘째가 생길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시져. 아니.' 우리는 이런 미신 있다며 웃어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윤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괜 임신테스트기를 돈 주고 두 개나 사고 있는 엄마를 보고 녀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둘째를 바랐다. 첫째를 키우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았고, 거의 매일 한숨을 내쉬는 날이 이어졌지만 신기하게도 둘째에 대한 생각에는 이견이 없었다. 셋이면 더 좋을 수도 있으나 둘은 꼭 있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4인 식탁을 가득 채우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에게 둘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외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을 마음은 물론 몸으로 절감하게 된 것이다. 첫 아이가 이제 20개월. 어느샌가 내 품에 안겨있는 이 녀석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짧지만 정확한 단어들로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한 녀석을 돌보기 수월해진 면도 있었다. 어렵사리 갖추어진 우리 가족의 균형이 다시금 바닥부터 어그러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무엇보다 둘째의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첫째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는 산책도 못하는 날이 늘어날 테고, 온통 제 세상인 생활에도 제약이 생길 것이다. 자기한테만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이 흩어지는 것은 물론, 엄마 아빠의 시간까지 나누어 써야 하는 상황에 녀석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첫째에 대한 미안함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나는 나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래. 결론적으로 이번 달은 실패다. 세 가족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음 달엔 네 가족이 될지도 모르지. 남편은 내게 말했다. 둘째는 덤이라고 생각하자고. 생기면 감사할 일이지만, 너무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이놈의 성질머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문제다. 괜히 날이 서고 뾰족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지루하고 힘겨운 일이다. 우리를 찾아오는 그 녀석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힘든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첫째 시윤이에게는 이번 기다림 쯤은 조금 더 이어지는 것이 좋은 것일지도.

 우리 가족이 지나고 있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모두에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시간이기를.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가 들수록 아빠가 그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