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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Jun 11. 2023

남미여행 part.2 다시, 히치하이킹 길에 오르다.

상파울루에서 버스를 타고 상카를로스로 향했다. 알렉스가 대학을 다닌 동네다. 알렉스의 대학친구들과 비치 테니스를 치고 방탈출게임을 했다. 같은 일정을 보내도 상파울루에서는 늘 스트레스가 가득이었다. 차소음부터 매연, 주차난 많은 기본적인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상카를로스에서 히치하이킹을 해 Franca로 향했다. 2017-2018년 남미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이후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분이 오묘했다. 나이가 20대 후반에 들어서며 나이가 든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살았는데, 최근 2년 일이 너무 힘들었는지 늙어가는 기분을 뼈저리게 느꼈다. 얼굴이 늙어져 가고 몸이 나이 들어가는 게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아마 환경이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치하이킹을 오랜만에 하며 “히치하이킹하기엔 너무 나이가 든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나이에 가둬뒀다. 첫 라이딩을 하고 역시 내가 나를 가둬 둔 거였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는 아무래도 시골사람 인가보다.




상파울루를 떠나자마자 새삼스럽게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하루종일 이동을 하고 뙤약볕에 표지판을 들고 한참을 기다려도 힘듦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묵혀둔 쌓여온 찌꺼기들을 버리는 기분이었다. 시골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그렇게 위험하다고 소문난 브라질도 시골에 오면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 여러 나라에서 히치하이킹을 해봤지만 브라질은 히치하이킹이 쉬운 나라 중 한 곳인 것 같다. 브라질 남쪽은 백인이 많아 의외로 도시의 경우 곳곳 위험한 곳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동양 여자아이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걸 보고 세상이 위험하다며 나를 지켜주기 위해 라이딩을 해준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북쪽 내륙으로 향했는데, 조금 더 순수하고 안전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도 힘이 들고 게으름의 끝을 달렸다. 며칠 전 이 여정을 떠난 첫날 그렇게 졸음이 쏟아질 수가 없었다. 평생 못자본 사람처럼 잠을 잤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시댁식구들도 모두 떠나보내고 책임감이란 것을 느끼고 있는지 몰랐는데 의외로 그 무게가 상당했나 보다. 정말 깊고 달게 잤다. 그러고 나니 몇 달 만에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클라우드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하고 이 여정을 다시 기록하고 싶단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 상카를로스에서 Serra da canastra를 가고 싶었다. 상카를로스에서 거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우린 프랑카에 있는 알렉스 친구네서 하루 자고 넘어가기로 한다. 2017년에 마지막으로 보고 오랜만에 재회한다는 그들, 새벽 3시까지 어린아이처럼 비디오게임을 했다. 프랑카는 정말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마을이었다.



히치하이킹을 왜 하나요?


나는 책임감이라는 걸 잘 내려놓지 못하고 그 무게를 오로지 다 느끼는 편이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해 보아도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고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도움들에서 매우 안정감을 받고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세네갈에서 그 마음을 처음 느꼈다. 처음 세네갈에 가 스스로 홀로 정착을 해야 하는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고 도움을 요청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코너 끝에서야 배웠다. 그리고 도움을 받기 시작하자 마음속에 응어리 진것들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면 그 속에서 도움을 받으며 나만의 정서적 안정과 여러 삶에서 받아온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 만 같다. 따로 응석을 부리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도움에서 받는 상처치유가 매우 크다.


 우리 커플은 다행히도 여행스타일이 비슷한데, 책에서 나오는 유명한 관광지, 꼭 가야 하는 곳 등 이런 것들에 큰 흥미를 느끼는 편이 아니다. 로컬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듣고 로컬들이 추천해 주는 식당, 관광지 이런 것에 ‘진짜’라는 마음이 들어 더욱 여행이 알차게 느껴진다. 나는 사전에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해 보지만 알렉스는 일단 떠나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 남미 여행할 때 아르헨티나 Comodoro rivadavia에서 Rio Gallegos까지 약 800km를 태워준 벤이 있었다. 10시간 정도 그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가는 곳곳 자기가 아는 스팟이 있다며 바다사자를 코앞에서 보여줬었다. 로컬들은 책에 없는, 인터넷에 없는 많은 곳들을 샅샅이 알고 알려준다.


 우리는 모든 삶들을 경험해 볼 순 없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볼 순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먹고 내 세상은 조금 썩 더 커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아직도 히치하이킹을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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