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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Oct 31. 2020

왜 화려한 쿠폰은 생수만 감쌀까?

[내일의 커머스 2021] - 02 다이어리 커머스

4년보다 컸던 2개월

 코로나 19 이전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마 그전으로 다시 온전하게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고,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어도, 우리의 달라진 여러 행동 방식들까지 모두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해왔고, 무엇보다 그에 따라 소비행태도 자연스레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일상적이기에 가장 느리게 변화해왔던 식료품 구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픈서베이는 코로나 19가 가장 극심하게 유행하던 지난 4월, 발 빠르게 코로나가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고작 유행이 시작된 지 2개월 남짓. 무엇이 변화했을까 싶었지만, 보고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개월 간 일어났던 변화는 그 이전 4년 동안의 그것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지표가 간편식 취식량이었다. HMR, 즉 간편식 시장은 매년 성장한다고 기사도 많이 났지만, 지난 4년 동안 취식량은 고작 3% 증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2달 동안 이 지표는 무려 5%나 상승한다. 정말 극적인 변화였다.


 이커머스의 시작은 온라인 서점이었다. 그 이후 티켓이나 전자제품 등의 비중이 커졌고,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인 건 화장품, 그리고 생활용품이었다. 품질이 균질적이고, 개개인의 차이가 덜 한 카테고리부터 성장하였고, 예를 들어 사이즈나 핏에 민감한 패션은 아무래도 뒤늦게 성장한 측면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식료품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도 낮은 편이었는데, 우선 신선식품은 신선도가 중요한 데다가 배송 인프라의 수준이 뒷받침 못한 부분이 컸다. 또한 비교적 품질이 균일한 공산품은 기저귀 등이 쿠팡의 초기 성장을 이끌 정도로 육아용품을 중심으로 온라인 시장이 열리긴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을 대체하는 속도는 느렸는데, 주요 고객층이 변화에 둔감한 4050 세대라는 점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들 전통적 소비자들도 오프라인으로 이끈다. 이 또한 오픈서베이의 식료품 구매 트렌드 보고서의 최신판을 통해 정량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작년만 해도 식료품 구매 시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비중은 33.9%로 11.5%인 온라인/모바일 마켓에 비해 3배 정도 높았다. 하지만 1년 만에 대형마트 이용률은 6.1%나 줄은 반면, 온라인/모바일 마켓은 7.6%나 급증하며 둘의 차이는 한자릿수로 줄어든다. 가장 느리게 변화하던 식료품 시장마저 변화의 급류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쿠폰이 생수만 감싸는 이유

 이러한 시장 변화에 가장 기민한 대응을 보인 곳은 역시나 쿠팡이었다. 쿠팡은 이미 로켓배송을 론칭하고, 분유와 기저귀라는 핵심 제품을 잘 잡아서 대형마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쿠팡에서 시작된 변화로 말미암아, 지난 2016년 시점에 이미 분유와 기저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판매 비중이 커진 것. 더욱이 기저귀와 분유를 둘러싼 이마트와의 가격 경쟁에서도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성공 경험을 가진 쿠팡의 고객 로열티팀은 이번에 다른 제품에 집중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 중인 소비자들의 시선을 확 끌면서, 식료품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단숨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제품을 말이다.


 쿠팡이 그래서 집중한 것은 바로 생수였다. 우리가 늘 먹으면서, 주기적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품. 그러면서도 공산품이기 때문에 품질은 균질하면서, 무게가 무거워서 집 근처가 아닌 차량을 가지고 대형마트 방문 시 사 오던 바로 그 제품 말이다. 쿠팡의 이상행동이 감지된 것은 올해 4월 말이었다. 쿠팡은 쿠폰 플레이나, 푸시 마케팅에 적극적인 플랫폼이 아니었다. 할인을 통한 가격 우위보다는 배송 인프라 기반의 서비스 우위로 경쟁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건 쿠팡이 2,3일에 1번씩 생수 할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 남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정말 지겹도록 보내왔다. 심지어 쿠폰까지 붙여가며 방문을 유혹했다. 


 이러한 쿠팡의 액션은 유의미했을까?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쿠팡의 생수 쿠폰 뿌리기 이후, 쿠팡의 방문 지표는 상당히 개선된다. 사실 4월 정도 되면 코로나 확진자 수가 진정되면서 쿠팡의 성장도 주춤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쿠팡의 생수 쿠폰 마케팅 이후 쿠팡의 방문자 수는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경쟁자인 티몬, 위메프 등은 방문자 수가 정체될 때, 쿠팡의 나 홀로 성장은 이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오픈 서베이 자료에서도 쿠팡은 식료품 구매 시 이용하는 온라인 채널 중 1순위로 꼽은 응답률이 29.8%로 압도적인 1위를 거둔 것은 물론, 전년대비 성장폭도 11.3%로 가장 컸다. 당시 쿠팡은 생수 쿠폰과 함께 로켓프레시 서비스 홍보도 병행하였는데, 그래서일까 신선식품 구매 비중에서도 1순위 비중 24.7%, 성장폭 12.6%로 둘 다 1등을 차지하였다.


 성공적인 전략을 판가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경쟁사가 이를 따라 하냐이다. 한 때 쿠팡의 로켓배송이 성공하자 우후죽순처럼 자체 배송 서비스가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쿠팡의 생수 마케팅도 동일했다. 어느 날부턴가 은근슬쩍 티몬도 위메프도 생수 할인 푸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네이버의 네이버 마트를 시작으로, 고비용 구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갔던 마트 서비스들도 다시금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자가 내일의 커머스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단지 단순히 마트 서비스를 론칭한다고 시장을 공략할 수는 없다. 답은 생수와 같은 핵심 상품을 누가 먼저 선점하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다이어리 제품에 있다.

 생수와 같은 상품을 지칭하는 명확한 용어는 없다. 회사마다 아마 별도의 네이밍을 붙이고 특별 관리를 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명칭은 마켓컬리에서 붙인 ‘다이어리 제품’이다. 마켓컬리는 소비자들이 매일매일 소비하는 제품을 일컬어 다이어리 제품이라 명명하고, 이를 PB화하는 것을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실제로 컬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품이 제주 목초 우유이다. 쿠팡의 전략도 이와 유사한데, 초창기 유명 브랜드의 생수를 전면에 내세우다가, 나중에는 자사 PB인 탐사수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근거리 배송을 무기로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B마트 역시 네쪽식빵이 초기 핵심 제품이었다.


 이와 같은 다이어리 제품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고객의 방문주기나 방문 빈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소비하는 제품이고, 더욱이 식품인 경우 주기적으로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주 방문하는 고객은 결국 해당 플랫폼의 충성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습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고객의 이탈률도 낮다. 우리는 가끔 구매하는 경우 정해진 패턴이 없기에 새로운 채널에 도전하기가 쉽다. 하지만 매일매일 구매하는 습관에 길들여진 경우 생각보다 이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분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단 방문한 고객은 발달된 큐레이션 기능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게 되고, 연계 구매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전략은 알고 보면 매우 긴 전통을 자랑한다. 요새는 덜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마트 전단지를 받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트 전단지에서 사실 강조하는 상품은 늘 뻔하다. 생수, 우유, 라면, 생선, 고기 등 정해진 상품이 반복되고, 거기에 계절상품 등을 살짝 얹는 형태이다. 결국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이런 다이어리 제품을 공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 버는 곳과 돈 쓰는 곳이 조화를 이룰 때 성공한다

 고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고객들의 지갑을 열고자 만 한다면,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어느 정도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있어야 해당 채널은 흥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돈을 벌고자 하는 채널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고 말이다. 그렇기 위해서 유통 채널은 돈을 버는 곳과 돈을 쓰는 곳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대형마트들은 그런 면에서 로스리더라 불리는 상품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 상품은 사실 팔면 적자인 상품이다. 하지만 이 상품을 사기 위해 일단 고객이 방문하면 다른 상품을 함께 사가기에, 결국 마트는 돈을 벌게 되는 구조였다.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백화점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수년간 백화점 MD들이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F&B였다. 유명 맛집과 카페 등을 들여오기 위해 공간을 내주고, 수수료를 깎아주었다. 공간 활용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백화점들은 많은 방문객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오프라인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온라인 식료품 시장도 똑같다. 당장은 돈이 안되고, 때로는 다이어리 제품을 손해 보며 팔더라도 일단 고객의 인지 속에서 1순위 채널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돈을 잃어야 최종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원히 돈을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할인 말고 다른 혜택을 주기 어렵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선 달리 장기적으로 돈을 벌면서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 2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배송 차별화이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달리 배송이 핵심이다. 배송 인프라는 초기 비용은 크지만 물량이 늘어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 전환할 수 있다. 쿠팡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다. 오늘 시키면 내일 생수가 배송되는 경험을 한 고객은 몇백 원 비싸도 쿠팡에서 다시 생수를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PB화이다. 일부 다이어리 제품은 명확한 차별화 요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컬리의 전략이 이것인데, 제주 목초 우유는 자연순환 농법, 저온 살균 등 확실히 차별화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우유의 경우 다소 비싸더라도 컬리의 PB를 사게 만드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뻔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다이어리 커머스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경쟁 키워드지만, 아쉬운 것은 이미 승자가 갈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공산품에서는 쿠팡이, 신선식품에서는 마켓컬리가 이미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이고, 이 둘의 우세가 내년에도 무난하게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승리는 쿠팡이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중요한 버팀목으로 작용할 것이고, 컬리가 유니콘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물론 변수는 아직 남아 있긴 하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곳이 이마트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업력과 상품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이마트가 보다 분전하여 조금 더 재미있는 경쟁구도를 만들기 바라본다.





머스와 IT에 관한 트렌드를 기록하고 나눕니다.
지난 1년간 뉴스레터를 통해 나눈 이야기를 기반으로 "내일의 커머스"를 상상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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