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머스 2021] - 03 고객보다 셀러 우선
얼마 전만 해도, 이커머스 시장은 업태 구분이 나름 뚜렷한 편이었다. 오프라인의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이 있다면 온라인은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종합몰 등으로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차별화 포인트도 나름 명확하였는데, 오픈마켓은 셀러들이 자유롭게 판매해서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 곳. 소셜커머스는 MD들이 직접 골라 상품 수는 적지만, 혜택이 확실한 곳. 종합몰은 주로 오프라인 기반의 쇼핑몰로 브랜드 상품이나 고가 상품을 사는 곳으로 구분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2,3년 전부터 무의미해지기 시작한다. 변화의 시작을 알린 것은 바로 쿠팡이었다. 쿠팡은 2017년 초 오픈마켓 전환을 선언하고 소셜커머스라는 굴레에서 벗어난다. 뒤이어 티몬도 오픈마켓을 선언하였다. 유일하게 소셜커머스로 남아 있던 위메프마저 작년 오픈마켓 전환을 선언하며, 소셜커머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전체 온라인 시장의 과반수 이상은 오픈마켓으로 분류되게 되었다.
그래도 소셜커머스 삼총사는 사실, G마켓, 11번가 등과 비슷한 온라인 태생의 채널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원래 둘이 잘 묶일 정도로 비슷한 업체들로 인식되었기 대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MD가 상품을 직접 소싱하는 구조로는 규모의 확장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소셜커머스는 모두 오픈마켓으로 전환할 거라고 다들 예상하기도 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롯데온이 오픈마켓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였다. 해외에서도 백화점몰이 오픈마켓화 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여기에 롯데에 뒤이어 SSG마저 오픈마켓 시장 참전을 선언하며, 정말 하루아침에 주요 쇼핑몰들 모두가 오픈마켓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왜 모두가 오픈마켓이 되고 싶어 할까? 이유가 궁금하다면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플랫폼, 이베이코리아의 재무제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과 옥션, G9라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십여 년 간 이커머스 1등 자리를 지켜온 강자. 그리고 이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조 단위 이상의 거래액을 취급하는 플랫폼 중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흑자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규모의 경제요. 둘이 바로 오픈마켓이라는 업태 덕분이었다. 우선 규모 측면에서는 수년간 거래액 1등 자리를 지켜올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해왔다. 이제 쿠팡과 네이버에 추월당하긴 했지만, 10조 이상의 거래액을 올리는 기업은 여전히 쿠팡, 네이버를 제외하면 이베이가 유일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재무제표상 매출액은 1조 남짓으로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 거래액 대비 매출액이 작은 것은 오픈마켓이 가진 특유의 거래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보다 흑자전환에 중요한 요소는 바로 오픈마켓이라는 사업 형태이다. 오픈마켓은 기본적으로 비용구조 측면에서 유리하다. 오픈마켓은 판매를 직접 하지 않고 중개할 뿐이다. 따라서 상품 배송, 교환, CS 등에서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또한 상품 등록이나 관리 등을 판매자가 직접 하기 때문에 MD 인력도 덜 필요하게 된다. 물론 상품의 판매금액 전부를 매출로 잡지 못하고, 수수료만 매출로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들이는 돈은 작긴 하다. 하지만 상품원가에 이런저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소셜커머스 모델에 비해선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만 보면 오픈마켓을 왜 다들 안 하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하지만 오픈마켓은 일단 만들면 돈 벌기 쉽지만, 그 일단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다. 많은 셀러와 상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플랫폼을 붐업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후발주자일수록 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일단 한번 형성된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는 매우 강력하여, 선도 기업을 따라잡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베이가 G마켓과의 경쟁 대신 인수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11번가가 오픈마켓이라는 유리한 사업모델로도 매년 적자를 낸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빠른 경쟁자 인수로 일단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은 이베이는 안정적으로 흑자를 내는 반면, 후발주자로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11번가는 수년간의 지속된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후발주자의 길을 왜 쿠팡은 걸어가려 할까? 더욱이, 그동안 쿠팡은 아마존 모델을 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존은 FBA로 대표되는 풀필먼트 역량을 기반으로 한 직사입 상품이 주무기 아녔던가? 그리고 왜 오프라인 기반의 롯데, 신세계는 대체 왜 뒤늦게 오픈마켓에 뛰어들지? 해외 성공사례도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나 후발주자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발을 들이 미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아마존이 풀필먼트 역량을 가지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최근 기조가 바뀐 것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존의 최근 성장은 서드파티라 일컫는 셀러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프라임 데이에서도 셀러 매출이 60%나 성장하면서 전체 실적을 주도할 정도로 말이다. 아마존이 서드파티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수익성도 좋으면서 매출액을 키우기에도 유리하다.
아마존 바라기 쿠팡은 당연히 발 빠르게 이러한 전략을 받아들인 모양새이다. 오픈마켓 전환 선언 이후 최근처럼 셀러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있나 싶을 정도. 여기에 아마존 FBA를 모방한 로켓제휴마저 론칭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자체 로켓배송 물량을 처리하기 바빠 풀필먼트 서비스는 엄두를 못 내던 쿠팡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드디어 이를 론칭한 것. 그동안 네이버나 이베이 등 다른 경쟁 오픈마켓 대비 밀리던 것을 이러한 배송 인프라로 이겨내려 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오픈마켓에 도전하는 이유는 조금 더 절박하다. 그동안 시장 경쟁구도상 롯데나 신세계는 어느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롯데는 우선 규모 면에서 꿀리지 않는다는 입장. 시장 추정치로 이런저런 계열사들을 다 모으면 8조 원 규모의 거래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뭉치기만 해 봐 다들 놀라게 해 주겠어. 이러한 자신감을 내심 가지고 있던 거로 보인다.
신세계-이마트는 거래액 자체는 롯데보단 작지만, 2,3조 원 정도로 나름 조 단위는 확보한 상황. 여기에 SSG라는 통합몰을 일찌감치 만든 데다가 쓱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도 나름 높았다는 점. 이러한 소기의 성과를 이미 보인 데다가 시장 내 경쟁구도가 워낙 치열하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시장 경쟁 구도가 급변한다. 시장이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어 간 것이다. 이베이코리아가 안정지향적 운영으로 도태되어가고, 11번가는 내실경영을 추구하며 경쟁력을 잃어갔다. 여기에 위메프와 티몬의 할인 중심의 특가데이/타임커머스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자, 급격히 쿠팡과 네이버 쏠림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둘은 거래액 순위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다른 경쟁사 대비 성장세도 가팔랐다.
이러자, 여유롭던 롯데와 신세계는 골든타임에 쫓기게 된다. 지금 반등하지 못하면 온라인 시장에서 영원히 뒤처질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올해 코로나로 인한 전격적인 오프라인의 위기 심화와 급격한 온라인 전환은 이 둘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선택은 하나. 빠르게 거래액을 늘려 덩치를 키워야 그나마 네이버와 쿠팡과 경쟁할 기회를 얻게 될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드스트롬 등 온라인 전환에 나름 성공한 것으로 보이던 북미 시장의 백화점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그나마 희망이 있는 곳은 월마트 정도인데, 월마트도 적극적으로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풀필먼트 서비스가 론칭하면서 필사적으로 말이다. 다소 무리해 보이는 오픈마켓 전환을 갑작스럽게 선언한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가?
그런데 신기한 것은 플랫폼들이 너도 나도 오픈마켓에 뛰어드는 이 시점에, 소비자에게선 셀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유튜브였다. 유튜버들의 성공사례가 화제가 되면서 나도 투잡으로 유튜브나 해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카메라를 사고, 영상 편집을 배우는 등 사회적인 열풍이 불었었다.
올해 이러한 열풍은 스마트스토어로 옮겨가는 모양새이다. 유튜브의 구독자를 모아서 광고를 붙이기까지의 난이도보다 스마트스토어로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무래도 쉽다고 판단한 것일까? 올해 월평균 3만 5천 개의 스마트스토어가 새로 생기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열풍에는 코로나발 취업난도 한 몫한 걸로 보이는데, 20대가 이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업의 시대를 맞이하여 신사임당 등 스마트스토어 관련 콘텐츠로 뜨는 유튜버까지 등장하는 등 연관 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는 이러한 트렌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프라인 쇼핑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침체되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도산하거나, 폐점 위기에 처하면서 반강제적인 온라인 전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식당과 카페 등은 너도나도 배달 플랫폼 입점을 하고, 옷 가게 등은 쇼핑 윈도 등에 입점하면서, 온라인 시장은 더더욱 거대해졌다.
이렇게 셀러들의 수가 올해 들어 폭증하면서,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도 그나마 한숨은 돌리게 되었다. 신생 업체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판매자 확보인데, 경쟁 플랫폼에서 셀러를 뺏어 오는 것보다 신생 셀러들을 유치하는 게 조금이나마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올해 메가 트렌드 중 하나인 슈퍼앱 쏠림 현상 덕분에, 네이버는 가만히 있어도 성장하는 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후발주자들은 모두 셀러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수수료 혜택은 물론, 광고, 물류 지원, 빠른 정산 등 다양한 수단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앞서 말한 쿠팡처럼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 대상 광고를 집행하는 등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마케팅 수단들도 등장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최강자 네이버는 확실히 너무나 강력하긴 하다. 이미 예전부터 업계 최저 수수료에 파트너스퀘어로 상징되는 다양한 판매자 교육 및 지원 제공. 더욱이 정산도 정말 빠르다. 최근에는 가장 약점으로 지목받던 물류도 다양한 풀필먼트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역량을 확보한 것은 물론,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들에게 이들 스타트업을 통한 풀필먼트 서비스마저 제공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CJ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선언하며, 특히 1위 택배사 CJ 대한통운과의 시너지도 기대되는 바. 아마 셀러 확보 경쟁에서도 네이버를 다른 업체가 이기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물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오픈마켓 중 내일 몇 개나 생존할 수 있을지 지금 당장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네이버가 가장 유리한 구조에 서있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업체들도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중 몇 개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이탈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분간 이들 플랫폼의 경쟁 덕분에 셀러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고객보다 판매자를 우대하는 어찌 보면 이상한 현상은 경쟁의 승자가 가려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오픈마켓이 되고, 모두가 셀러가 되는 세상. 지금과 같은 변화가 지속된다면, 내일의 커머스의 모습은 아마 이러할 것이다. 어떤 기업이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할까도 중요하지만 이번 키워드에서 더 기대되는 것은 우리 일상의 변화이다.
그동안 옴니채널 경험은 소수의 대형 플랫폼이나 기업에서만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일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까? 동네 슈퍼나 빵집에서도 우리는 온오프를 넘나드는 쇼핑이 가능해질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가 되는 시대가 진짜 찾아올 것이다. 엘빈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머의 시대가, 모두가 판매자이면서 소비자인 시대로 정말 실현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