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머스 2021] 05 퀵커머스
올해 트렌드를 코로나 19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면, 코로나 19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업종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후보들이 있겠지만, 역시나 배달시장을 빼놓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 시장은 역대 최대 규모로 성장하였다. 특히 매장 판매에만 집중하던 많은 가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배달 플랫폼에 입점하게 되었는데, 말로는 코로나 이후엔 다시 매장 판매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아마 외식의 중심이 매장에서 배달로 바뀐 현 상황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폭발적인 시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배달의 민족은 작년부터 연이은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름 성공적인 엑시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의 민족이라는 조롱이 쏟아질 정도로 나빠진 대외 이미지. 배달 대행 기사의 처우 문제로 인한 일종의 노사갈등. 일부 정치인들의 저격으로 시작된 공공 배달앱 론칭. 거기에 무서운 후발주자 쿠팡이츠와 위메프오까지. 정말 바람 잘 날 없었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방문자 수도, 방문자 로열티도 모두 성장하며 시장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배달의 민족이 수많은 위기를 견뎌내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B마트를 주목해야 한다.
배달의 민족은 다양한 신사업을 시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배달이나 식품 관련 서비스는 물론 만화경 같은 웹툰 서비스까지 분야도 참 다양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모든 신사업이 성공하지는 못한다. 정확히는 배민라이더스를 제외한 다른 신사업들은 대부분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초기 마켓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신선식품 커머스, 배민프레시의 실패는 내부에서도 꽤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배민프레시의 실패 이후 배민이 다음 타자로 생각한 것이 B마트였다. 배민라이더스를 통해 확보한 공급망으로 생필품을 판매하겠다던, B마트의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앞날은 꽤나 불투명한 서비스였다. 왜냐면 비용구조가 그리 좋지 않은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배달의 민족은 적자를 기록하였는데,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B마트 론칭 후 늘어난 마케팅 비용일 정도였다. 따라서 빠른 시간 내에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다면 B마트도 배민프레시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퍼져나가면서 B마트는 반전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1인 가구 특화 커머스답게 외출이 줄어들면서 B마트 이용률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하루 5만 건, 월 150만 건의 주문을 처리할 정도로 급성장하였고, 지금도 꾸준히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B마트의 성공은 배달의 민족이 이제 단순한 배달 앱을 넘어서 커머스 서비스로 자리 잡게 하였다. 이에 따라 고객은 더욱더 배달의 민족을 방문하게 되었고, 덕분에 경쟁자의 거센 추격과 공공앱의 위협을 유유히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B마트가 연 새로운 시장을 퀵커머스라고 한다. 퀵커머스는 로켓배송 이후 등장한 익일 배송, 마켓컬리가 시작한 새벽 배송 이후 다시 한번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배송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다. 퀵커머스는 말 그대로 빠르다. 주문 즉시 배송이 시작되고, 바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B마트의 경우 주문 후 30분 내외면 도착한다. 속도 측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니며, 이미 배달 서비스로 충분히 검증된 예상 도착 시간까지 제공되어 정시성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물론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퀵커머스 서비스가 바로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본 사람들도 많았다. 근거리 배송은 특성상 소단량 배달만 가능한데, 굳이 집 앞 편의점을 두고 주문하겠냐는 의견이었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고, B마트만 하더라도 초기에 신기해서 써본 사람들이나 쿠폰에 혹해 써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수가 이용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이르게 대중화에 성공한다.
이러한 퀵커머스가 구현되려면 정말 많은 수의 물류 거점이 필요하다. 어떤 주문이든 30분 내외로 처리하려면, 서비스 지역 내 모든 배달지 대상으로 30분 내 배송이 가능한 다수의 거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실 이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다수의 매장과 근거리 배송 인력과 차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던 대형마트였다. SSG의 쓱배송이 대표적인데, 기존 마트의 배달 차량을 활용한 예약 배송을 이용하면, 주문 당일에도 정해진 시간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정부의 규제였다. 대형마트는 법으로 의무휴업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근거리 배송을 매일매일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SSG가 네오라고 부르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별도로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모델은 배달대행업체들이 이어받게 된다. 이륜차량을 주로 활용하는 이 업체들은 음식 배달 자체가 특정 시간대에 몰리기 때문에 어차피 유휴 인력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편의점 배송 모델. 지금도 편의점 배달 서비스들이 있긴 하지만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아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정말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퀵커머스 모델의 성공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다소 소극적이었던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도 다시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롯데는 롯데온 오픈과 더불어 근거리 배송을 하나의 차별화 무기로 삼아 적극 활용 중이며, 편의점 업계에서도 배달 점포를 늘려가고 있다. 쿠팡도 쿠팡이츠를 이미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시장 진입이 가능한 상황이고, 네이버도 배달 대행업체인 생각대로에 투자를 검토 하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사실 이러한 근거리 배송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최근 수년간 지속된 1인 가구 트렌드와 맞닿아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이들을 노린 비즈니스 모델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B마트의 메인 타깃도 이들인데, 궁극적으로 냉장고의 필요성을 없애는 게 사업 목표라고 한다. 1인 가구는 장을 볼 때 쓸데없이 많이 구매할 수밖에 없어서 냉장고에 늘 쓸데없는 재료들로 가득 차 있기 마련.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바로 구매할 수 있고, 또한 소단량으로 포장된 상품을 제공하여 이들의 니즈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차피 이륜차로는 소단량 배송만 가능한 점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올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퀵커머스는 앞으로도 계속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B마트라는 하나의 큰 이커머스 플랫폼을 남길지, 다수의 플레이어가 경쟁하는 퀵커머스 시장으로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이다.
예를 들어 쿠팡이 연 익일 배송 시장은 로켓배송 말고는 사실상 다른 업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벽 배송은 이보다는 낫지만 로켓프레시, 마켓컬리 등 소규모 업체들만이 살아남은 상황. 배민 프레시는 서비스를 종료했고, 헬로네이처의 성장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류의 혁신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만, 워낙 초기 투자가 많이 들기 때문에 모든 업체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소수의 기업만 남게 된다.
이번에 등장한 새로운 조류인 퀵커머스도 분명 초기 물류 인프라 없이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기존의 새벽 배송 등과 다른 것은 이미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바로 구현할 수 있는 배달 대행업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각대로, 바로고, 부릉 등이 이러한 업체들인데 이들과 합종연횡을 한다면 생각보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공존하는 그림이 나올지도 모른다. 결국 성장하는 퀵커머스 시장의 향후 관전 포인트는 B마트가 얼마나 시장 지배력을 쌓을지. 또한 어떤 경쟁자가 새로 등장해서 B마트를 위협할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