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머스 2021] - 04 구독 경제
내일의 커머스 키워드로 ‘구독’을 꼽는다면 아마 이런 반응이 오지 않을까? 응? 구독 서비스 원래 몇 년 전부터 인기였잖아? 전혀 새롭지 않은데? 이게 왜 핵심 키워드지?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년 전부터 너무 많이 회자되어서 그런지, 구독 서비스, 구독 경제는 정말로 철 지난 키워드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독 경제의 원조는 미국이다. 달러쉐이브클럽, 와비파커, 렌트 더 런웨이, 스티치픽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인데, 2000년대 후반 혹은 2010년대 초반에 대부분 사업을 시작하였다. 구독 서비스 자체가 등장한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는 말이다. 또한 이러한 구독 서비스는 D2C 비즈니스 모델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분명 한 때는 잘 나가던 모델이었다. 달러쉐이브클럽은 유니레버로부터 10억 달러에 인수되었고, 와비파커는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최근 전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스티치픽스의 경우 매출은 성장하고 있으나 수익률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고, 한 때 시장에서 각광받던 D2C 모델도 브랜드리스의 폐업 이후 주춤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국내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던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패션 구독 서비스만 해도, SK플래닛이 만든 프로젠트 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윙클로젯, 원투웨어 등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원조인 미국에서도 흔들리고 있고, 국내에서도 실패를 거듭한 모델을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할까? 그 이유를 지금부터 나눠보고자 한다.
우선 해외 사례는 분명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만, 몇몇 실패 사례가 나왔다고, 구독 경제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너무 트렌드가 되면서 무분별하게 등장한 서비스들의 본격적인 옥석 고르기가 시작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스티치픽스만 해도, 영업 이익률이 1%대로 떨어지면서 주가도 30%나 급락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년 매출은 무려 15억 달러. 이미 규모의 경제를 충분히 구현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이익률이 나빠진 것은 후발주자와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스티치픽스의 이익률이 아니라 매출 규모에 있다. 국내 패션 구독 서비스들은 왜 모두 실패하였을까? 스티치픽스처럼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한 수준에 빠르게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옷은 한정되어 있고, 인기 있는 옷은 늘 대여 중이었기에 고객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탈하게 되었던 것. 국내 성공 모델이 있었다면, 대기업 경영진이나 투자자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거나 추가적인 투자를 했겠지만, 당시만 해도 그들은 기다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하지만 드디어 올해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성공 모델이 탄생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D2C모델과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와이즐리가 그 주인공이다. 와이즐리는 대표적인 해외 성공 사례인 달러쉐이브클럽을 벤치마킹하여 탄생한 곳이다. 면도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제 막 3년 남짓 된 신생 브랜드이다. 그런데 오픈서베이의 남성 그루밍 트렌드 보고서에서 면도날 이용률 4위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용률은 6%로, 1위 질레트의 75%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20대의 이용률은 10%로 두 자릿수를 돌파하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구독 서비스는 신기한 서비스이지, 내 주변에서 누군가가 실제 쓰고 있는 서비스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었다. 하지만 20대 기준이지만 10명 중 1명이 쓰는 서비스로 올라설 정도로 볼륨 확보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말 대중화된 구독 서비스가 등장할 날이 초읽기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독 서비스가 드디어 알을 깨기 시작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와이즐리라는 서비스 자체가 매력적이었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뜬금없지만, 넷플릭스의 성공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구독 서비스가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개념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친숙한 개념은 아니었다. 구독료를 내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는다고? 한 번도 비슷한 걸 해본 적 없는데 괜찮을까? 이러한 낯섦에서 오는 본능적인 거부감은 지금까지 많은 구독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좌초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킹덤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강타한 넷플릭스는 우리 모두가 구독 서비스 경험자가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최소로만 잡아도,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가 336만 명이라고 한다. 1번 이상 넷플릭스 앱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수는 572만 명. 정말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은 구독 서비스를 유료 결제해봤다는 것이다. 더욱이 2030 세대로만 한정 짓는다면 그 비율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드디어 구독 서비스가 꽃피울 토양이 마련된 셈이다.
이와 같은 넷플릭스의 성공이 이어지자, 역시나 가장 먼저 움직인 업체들은 이커머스 플랫폼들이었다. 아마존프라임이라는 전설적인 성공 사례를 본받아, 유료 회원제를 앞다투어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료 회원제도 일종의 구독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데, 연회비 혹은 월회비를 내고 여러 혜택을 받는 형태이다. 국내에서는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클럽, 쿠팡의 로켓와우가 선두 주자였는데, 이들 모두가 대성공을 거둔다.
그래서 2020년 현재, 무려 40%의 소비자들이 유료 멤버십을 이용하고 있다. 먼저 스마일클럽은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이용률 측면에서 전년보다 하락하긴 했지만, 네이버와 쿠팡의 급성장 속에서도 이베이코리아가 어느 정도 본인의 영역을 지킬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로켓와우는 정말 로켓배송에 이은, 결정타라고 할 정도로 쿠팡에게 큰 힘이 되었다. 쿠팡의 약진에는 로켓와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용률도 꾸준히 높아지며 쿠팡의 힘이 되고 있다.
물론 위메프와 티몬, 요기요 등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고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아예 서비스를 종료한 기업들도 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기업들이라는 점. 유료 회원제라는 서비스 모델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올해 네이버조차 유료 멤버십에 도전할 정도로, 이제 유료 회원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구독 서비스 성공 모델의 등장, 넷플릭스에 촉발된 구독의 일상화, 대세가 된 유료 회원제까지. 모든 상황적 요인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코로나 19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는다. 코로나 19랑 구독 서비스가 무슨 상관이냐고?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가장 많이 하게 된 행동이 뭔지 아는가? 바로 집콕이다. 집콕족이 늘어나면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면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OTT이다.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들이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정말 빠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외출을 꺼리기 시작하면서 직접 방문하여 처리하던 일들을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빨래나 반려동물 관련 사료 구입 등으로 정기적으로 하긴 해야 하는데, 외출을 할 수는 없으니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외출이 줄어들어 생사의 기로에 선 오프라인 매장들도 회심의 한 수로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회복되었지만, 예전만큼 소비하지는 않는 상황. 줄어든 매장 방문을 우리 매장이 모두 독식하기 위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커피 구독 서비스가 가장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던킨, 버거킹 등 이미 다양한 프랜차이즈에서 시행 중이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동안은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새로운 차세대 유니콘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 미국처럼 쭉정이 서비스들을 시장에서 골라내기 시작할 것이고, 따라서 많은 실패작들도 나타날 것이다. 결국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소수 만이 살아남아 그 과실을 먹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경쟁전략의 고전 중 하나인 차별화에 있다. 우선 작은 구독 서비스들은 쪼개고 쪼개야 한다. 실제 요새 등장하는 구독 경제 서비스는 매우 신박한 것들이 많다. 과자부터 아이스크림, 전통주에 심지어 그림까지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쪼개서 맞춤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되 그것이 정말 소비자가 편리하다고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소비자가 원하는 편익을 제공할 줄 알아야 한다. 와이즐리의 경우도, 가격과 면도 습관이라는 핵심 가치를 건드려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는 대형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티몬이나 위메프가 실패한 이유는 할인이라는 흔한 가치 외의 것을 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쿠팡은 그동안 로켓배송 고객들이 불편해하던 최소 구매금액 허들을 과감하게 없애주면서 로켓와우를 흥행시킬 수 있었다.
오프라인 소비는 코로나로 인해 줄어들고, 온라인 소비는 대형 플랫폼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결국 우리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모든 업체들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단골 고객 확보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구독 서비스인 만큼 이제야 구독 서비스의 전성시대가 진정 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구독 서비스가 살아남아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지 내년 이맘때쯤의 모습이 기대된다.